[시인의 집] 호접몽에서 매트릭스까지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9.02.2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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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정진경 시인 ‘사이버 페미니스트’

[시인의 집] 호접몽에서 매트릭스까지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진경(1962~ )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사이버 페미니스트’는 몸과 정신, 몸 안과 몸 밖의 세계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은 장자의 ‘호접몽’부터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세계까지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성”(‘시인의 말’)에 천착한다.

유사 이래 인간의 상상력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몸 안에 대한 상상력은 “기호와 몽상의 융합체 휴먼노이드”(‘네오 인터페이스 연애’)를, 몸 밖에 대한 상상력은 “인공지능의 뇌”(이하 ‘신인류의 출생기’)를 장착하거나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세계를 만들어냈다. “디지털 신호로 업로드”된 뇌로 “신인류”는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종(種)으로 존재한다. 이 공간은 그냥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의 사회이자 현실이다.



육체의 껍질을 벗어 컴퓨터 의자에 놓는다

신이 창조한 인간과
인간이 창조한 기계가 접속해 낳은 아바타
인간의 정신과 전자회로의 몸을 가진 나는
반인반회로의 존재로 살아간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아바타
차이가 없어 차별이 없는 테크놀로지 유토피아
이 세상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젠더이다
근육질 남성의 패러다임이 사이버 공간에 침투해 있어
그곳에서 나는 사이버 페미니스트
혼종의 존재로 새로운 사회활동을 한다

랄랄라, 전자회로 문화에 저항하는 즐거움
아바타 게르는 편견이 없어 튼튼하다
어슬렁거리는 뱀 아수라 유혹과
심리적 아담과 심리적 이브의 밀당이
사이버 공간에도 존재하지만
화인이 강렬하게 찍혀 있는 성이 아니라서
생물학적인 강박증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인간의 뇌는
신이 세운 질서를 이탈할 궁리만 하는 브레인
뇌와 접속된 아바타도 언젠가는
너를 만든 나로부터 도망갈 것이다


인간의 정신과 기계의 몸을 차별하지 않는 그곳으로
- ‘사이버 페미니스트 되기’ 전문


“인간이 창조한 기계가 접속해 낳은 아바타”는 ‘나’이기도 하고 ‘나’가 아니기도 하다. 남성이나 여성이기도 하고, 중성이기도 하다. 성개념에 대한 기존질서를 흐트러뜨린다. 가상공간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특히 아이템을 구입해야 하는 게임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발생한다. 부유해야 더 좋은 아이템을 많이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대신하는 아바타만큼은 “차이가 없어 차별이 없는 테크놀로지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시인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신이 세운 질서를 이탈”해 내가 사람인지 나비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호접몽’의,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는 이상사회다. “신이 창조한 인간”은 “소통이 안 되는 플라톤의 동굴”(‘나는 기록된다 고로 나는 분열된다’)에 갇혀 한쪽 면만 보기를 강요당하는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몸(육체)은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구속하는 감옥이므로, 몸을 벗어나려 한다. 영혼처럼 아바타도 “인간의 정신과 기계의 몸을 차별하지 않는 그곳으로” 도망치려 한다.

몽골 야생마가 풍덩 바다로 뛰어 든다

쇼윈도 쇼핑 전시물이었던 산호초 붉은 옷을 몸에 휘감으며, 그는 어군(魚群)과 어우러지는 유영을 마침표 찍는다 옆구리에 장착한 작살의 날카로운 비늘이 욕망을 포획하는 스쿠버다이버 장비로 돌아온다

바다와 동반자로 살아온 그가 몽골 야생마로 변한 건 지난 밤 누군가와 다툼이 있은 후다 눈에서 풍기는 비린내, 조절되지 않는 감정의 잔해가 바다에 풍파를 일으킨다 그가 한 결정적인 실수는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로 물고기를 포획한 것, 홈그라운드에 맞지 않는 심리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질주에 눈멀어 바다 시계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욕망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작살이 물고기를 관통하여 그에게로 날아간다

식재료로 전락한 생선과 나란히 병렬되어 있는 그의 주검

명중되지 않은 욕망이 살아 움직인다
- ‘욕망의 작살’ 전문


“유랑하는 영혼의 기질”(‘아방가르드 기생, 아바타’)을 타고난 ‘나’는 “원초적인 몸뚱이로 활개를 치는 야생”(이하 ‘야생의 생기론’)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리할 수 없는 것은 “천방지축 날뛰는 다중인격 욕망” 때문이다.

욕망에는 속도가 깃들어 있다. 욕망의 속도가 빠를수록 실수도 치명적이다. 그것을 잘 아는 시인은 “할머니가 피우는 옛날이야기”(‘스토리텔러의 자질’)의 정겹고도 느린 세상을 그리워하고, “세상이 나를 간지를 때마다” “행복한 잔뿌리로 자라”는 눈가의 주름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동경한다.

시 ‘욕망의 작살’은 뛰어난 상상력으로 욕망의 과잉이 불러온 참사를 다루고 있다. “몽골 야생마” 같은 스킨스쿠버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수심·잔압·다이빙한계시간·다이빙시간 등 수중에서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해 죽는다. 냉정해야 할 바다 속에서 “몽골 야생마로 변한 건 지난 밤 누군가와 다”투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망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물고기를 잡던 “작살이 물고기를 관통하여 그에게로 날아”가고 만다. 그는 죽어 그가 잡던 물고기처럼 나란히 눕는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이나 타인에게 행한 욕설이나 비난도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다. 내가 죽었다고 하여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화인(火印)처럼, 때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처럼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너를 속이기 위해 나는 오리발 가면을 쓴다

언젠가 네가 내밀고 간 오리발 몸통이 자라
내 안에 둥지를 틀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불신이 알을 품어 부화를 했다
너를 닮은 불신이 껍질을 깨는 출산의 시간에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불신의 알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한 아프락삭스였다
오리발에는 오리발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증발하지 않는 늪의 인간, 가면이 얼굴을 조인다

세상과 나의 경계가 되어버린 오리발은
민낯의 세상이 두려워 더욱 두꺼워진다
오리발을 생필품 팔듯이 내미는 뉴스 채널에서
얼굴을 돌리고
흥미진진한 야사(野史)만을 회고하는 토크쇼에 몰두한다

망각은 세상을 여는 가장 쉬운 열쇠지만
망각한 일들이 환청이 되어 달그락거리는
오리발 가면이 언제부턴가 숙명이 되었다

의도적 망각이 늪으로 자라 출렁이고 있는
고리타분한 가면, 오리발
나는 나를 속이기 위해 오리발 가면을 쓴다
- ‘고리타분한 가면, 오리발’ 전문

정진경의 시는 나를 찾아가는 고단한 여정이다. 그것은 글 서두에서 밝힌 몸과 정신도 마찬가지다.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불신과 편견, 거짓과 싸우면서 견뎌야 한다.

나와 타인의 싸움은 해결책이 아닌 “가면이 얼굴을” 더욱 조이는 정신적 고통을 더할 뿐이다. “불신이 껍질을 깨는” 순간 나를 망각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도 싶지만 이 또한 나 자신을 더 속이는 행위와 다름없다. 여러 개의 가면 대신 선택한 가상세계도 어쩌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불신이 알을 품어 부화”한 “환상통”(‘병신문화’)일지 모른다.

한편 ‘오후시선 2’인 이번 시집은 50편의 시에 20대 젊은 작가 이몽로의 사진 50컷을 함께 수록, 읽는 맛에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사이버 페미니스트=정진경. 역락. 118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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