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재산 계약의 대안 '가족신탁'

머니투데이 오영표 신영증권 신탁사업부 이사 2019.02.21 11:29
글자크기

[머니디렉터]오영표 신영증권 신탁사업부 이사

부부재산 계약의 대안 '가족신탁'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이혼하면서 전 재산 153조원의 절반을 75조원을 아내 맥켄지에게 재산분할로 지급할 것이라는 소식이 새해 벽두의 화제이다. 제프 베조스는 매켄지와 결혼할 당시 ‘부부재산계약(prenuptial agreement)’을 하지 않아서 워싱턴주 가족법을 그대로 적용을 받아 거액의 재산분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재산분할계약을 결혼 전에 하였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미국 가사전문 변호사들은 얘기한다.

부부재산계약이란 결혼할 의사를 가진 당사자가 결혼 후 형성되는 재산에 대해 법률관계를 미리 약속하는 계약으로, 비단 미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민법은 혼인 전에 미리 이혼에 대비하여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그 계약의 내용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유효하다. 혼인 전 재산이 부동산인 경우에는 혼인 성립까지 부부재산계약을 등기함으로써 계약의 이행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조기∙황혼 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자산가들이 여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부부재산계약을 활용해서 해결할 수 있다. 첫째, 재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산가들은 이혼하면서 재혼 전에 미리 부부재산계약을 해 놓으면 안심할 수 있다. 특히 법률상 재혼을 하게 되면, 상속지분이 줄어들게 되는 자녀들의 눈치를 보면서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을 유지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그렇다고 사실혼을 유지하다 부부 일방이 사망할 경우 상대방은 상속권이 없기 때문에 자칫 경제적 곤궁에 놓일 수 있다. 둘째, 결혼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 입장에서 미래에 자녀가 이혼을 하게 된다면 자녀에게 증여한 재산이 이혼 시 재산분할로 감소할 것을 우려하여 그 대책으로 부부재산계약을 문의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부부재산계약을 혼인 전에 미리 체결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가장 행복한 시기에 가장 불행한 이혼을 미리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계약 논의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상할 수 있으므로 그 활용도가 낮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부부재산계약보다 ‘가족신탁’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가족신탁이란 생전 재산관리와 사후 재산분배를 미리 계약하는 것으로, 증여신탁과 상속신탁을 포함하여 가족의 재산관리를 위한 신탁을 아우르는 용어다. 가족신탁은 혼인 기간 동안 재산의 보관, 관리, 이혼 시 재산분할, 부부 일방 사망 시 재산배분 등 다양한 이슈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점에서 재산분할계약보다 더 효과적이다.



결혼 시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에도 가족신탁을 활용하면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이혼에 대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증여한 재산을 일정 기간 동안 부모의 통제권을 그대로 보유하다가 자녀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것으로 판단될 때 계약을 해지하여 자녀들이 자유롭게 재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신탁계약을 해 놓으면 부모가 안심할 수 있다.

한편, 재혼 전후로 가족 간 분쟁 사례가 주변에 많이 보인다. 재혼하게 되면 재혼 그 자체에 대한 자녀들의 거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속지분이 줄어들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대두된다. 재혼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도 가족신탁을 통해 미리 재산 관리, 배분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재혼을 하면, 가족 간 서운함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 눈치 보며 재혼을 못 하는 분들에게는 가족신탁이 훌륭한 장치가 될 것이므로, 향후 가족신탁의 활용 빈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