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9.02.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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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공장, 후진하는 車산업]②경쟁력 잃은 국내 車 생산-유연한 노사협상 필요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한국이 자동차 생산기지로서 더는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떨어져서다."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은 최근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가 르노삼성에 대해 '신차 배정 불이익' 가능성을 밝힌 데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자동차 업계는 르노삼성에 대해 '제2의 한국GM 사태'를 우려한다. 지난해 미국 GM그룹은 한국GM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낮은 생산성에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 사례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강성노조의 잦은 파업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높은 인건비·낮은 생산성…R%D 투자는 미뤄=르노삼성·한국GM만의 문제가 아니다. 높은 인건비, 낮은 생산성 등이 자동차 산업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 근로자의 임금은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업체 5곳의 연간 평균임금은 2017년 기준 9072만원으로 2005년과 비교해 81.1% 올랐다. 일본 토요타(8503만원)와 독일 폭스바겐(8340만원) 등 주요 경쟁업체를 웃돈다.

한국에서 수출용 차를 생산하기엔 임금 수준이 너무 비싸다. 인건비 상승은 기본 생산비용을 의미한다. 이기인 르노삼성 제조본부장 부사장은 "(다른 나라 공장과 비교해) 임금을 포함한 생산 원가 측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생산성은 오히려 낮다. 한국(완성차 5개사 기준)에서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HPV·2015년 기준)은 26.8시간이다. 토요타(24.1시간)와 GM(23.4시간)보다 각각 11.2%, 14.5% 길다. 임금은 높지만, 경쟁국 대비 낮은 생산성을 보인다.


제품 품질 향상에 투입될 재원 역시 줄어든다. 현대·기아차의 2017년 연구개발(R&D) 투자액은 37억달러로 토요타(95억달러)·폭스바겐(148억달러)·GM(73억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품질의 신제품 생산을 위해 R&D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높은 고정비(임금)로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경쟁력 잃은 국내 車 생산…車생산 400만대 밑돌 듯=한국은 2007년 처음 400만대 넘게 차를 생산했다. 2008년과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400만대 선을 지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402만8834대로 전년(411만4913대)보다 2.1% 줄었다. 한국은 세계 자동차 생산 10대 국가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생산량이 줄었다. 2015년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던 한국은 2016년 인도에 추월당한 데 이어 2년 만에 멕시코에도 뒤졌다.

올해는 400만대 생산이 위태롭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0.1% 증가한 9249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3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의 정체가 예상된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불황기 속에서 한국 자동차 생산량이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韓 생산은 싫다…유연한 노사협상 필요=노사관계 부담을 피해 한국 자동차 공장은 해외로 가고 있다.

한국 완성차업체가 자동차 공장을 지은 것은 1998년 르노삼성 부산 공장 이후 전무하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로 광주광역시가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반값 연봉' 덕분에 가능하다. 2012년 절반 아래로 내려간 현대·기아차의 국내 생산 비중은 여전히 40%대다.

외부의 압박도 거세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내며 수입차에 대한 최대 25% 달하는 고관세 압박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할 차량은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의미다. 르노삼성은 위탁생산 중인 닛산 로그 전량을 북미로 수출했다.

대내외 어려움에도 자동차 업계는 '노조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는 신차를 투입하거나 잘 팔리는 특정 모델을 더 많이 생산하려면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 매년 임금협상이 벌어지고,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파업도 부담이다. 미국 GM은 노사 합의로 4년의 협약 유효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김 회장은 "매년 벌어지는 소모적인 노사 갈등은 자동차 공장의 효율성을 떨어지는 주요한 요인"이라며 "노사관계를 국제적·유연적 체질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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