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교통정책 놀라운 변화, 톨게이트 유료화에 철도 BC 분석도"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9.02.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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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북한경제 전문가에게 듣는다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편집자주 [편집자주] "북한은 '경제적 로켓'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당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담판 테이블에 앉은 이유를 보여준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급속한 시장화 흐름에서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대북제제 해제를 요구하고, 미국이 '경제부국'을 북한의 미래로 거론하는 이유다. 머니투데이 the300은 27~28일 제2차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통해 북한 경제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순서 ①임강택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②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③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④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⑤이춘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⑥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④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설의 노후화, 이질적인 시스템 등으로 북한 철도 현대화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사업성 있는 구간은 외국 자본을 끌어 들여 합작 사업으로 할 의향이 있을 겁니다."

현지 조사를 포함해 50번 넘게 방북한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그는 17일 머니투데이 the300과 인터뷰에서 북한 철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심각한 시설의 노후화, 이질적인 시스템, 전력문제 등을 꼽았다. 남북이 합의한 철도 현대화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거란 진단도 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철도에 대한 북한의 접근방식이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는 데 주목했다. 철도 현대화에 과감한 외자유치 정책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 북한이 작성한 투자제안서 등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권다희 기자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권다희 기자


-북한에서 철도의 중요성은
▶️북한에 철도는 운송 수단의 한 종류가 아니라 운송 수단 자체다. 철도가 절대적 운송 수단이다. 도로, 해운 등은 보조 수단이다. 한마디로 ‘주철종도(主鐵從道)’다. 북한의 화물수송은 90%가 철도로 이뤄진다. 여객수송의 철도 비중은 60%다. 김일성도 철도가 잘 운영되는 걸 혈액 순환에 비유했다. 철도의 위상을 보여준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북한에서 가장 싸고 빠르며 안전한 수단이다.



-한반도 교통망의 기원은.
▶️한반도 교통망은 대부분 일제가 건설했다. 일본이 철도를 만들 때는 크게 3가지 목적이 있었다. 지하자원 개발을 위해 북한 내륙의 깊숙한 광산지역까지 철길을 건설했다. 또 수탈한 물자를 항만으로 연결해 반출하기 위해 항만 연결형 철도가 구축됐다. 마지막으로 대륙으로 넘어가기 위해 만주지역과 연결했다. 그래서 한반도 교통망이 ‘엑스(X)자’ 형태로 건설됐다. 가장 싸고 신속하게 건설하고,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한 체계다.

하지만 단점은 X축의 중간 부문이 단절되면 시스템이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남측은 대륙으로 연결되는 운송망을 상실하고 북측은 거점 항만을 잃게 된다. 또 원료 공급지와 가공지,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된다. 남북 분단은 한반도 교통망을 비정상화시켰다. 남측은 대륙으로 이동할 길이 다 끊어져 해운, 항공 중심으로 운송수단이 발전했고 북측은 철도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북한 철도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높은 단선 비중이다. 북한 철도 노선의 97%가 단선이다. 경의선은 1940년대 초반 복선으로 구축됐으나 철도망 분단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궤도를 철거해 다른 지역 철도건설에 전용했다. 단선 철로에선 상행열차와 하행열차를 동시에 운행할 수 없다. 상행열차보다 하행열차 운행을 우선해야 한다면 정거장 등에서 대피해야 한다. 시골의 1차선 농로에서 마주 달리던 자동차가 맞닥뜨린 상황과 비슷하다. 화차 40량을 끌고가는 화물열차가 대피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00~600m의 대피선이 있는 정거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평양-신의주' 구간 230여km에 대피할수 있는 역은 6~7개에 불과하다.


다음으론 전력 부족과 전력 방식의 차이다. 북한의 전철(전기철도)화 비율은 약 80%다. 우리가 70%대인 것과 비교해 굉장히 높다. 전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보다 견인력이 2~3배다. 비용도 저렴하다. 북한은 분단 후 남측으로의 송전을 중단했다. 이런 유휴전력으로 북한철도를 전철화했다. 경제가 정상적이고 발전량이 풍부할 때는 철도가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력난이 북한 철도 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0시간이면 운행가능한 거리를 갑작스런 단전 등으로 3~4일씩 소요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빈번하다. 남측 전력방식은 교류 2만5000V를 사용하는 반면 북한은 직류 3000V를 사용한다. 현재로선 우리 전기기관차가 북한을 주행할 수 없다. 통신, 신호체계가 다른 점도 심각한 문제다.

-북한 열차의 속도도 상당히 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가장 빠른 열차는 평양에서 북경으로 가는 열차다. 열차시간표를 보면 225km를 가는데 약 5시간이 걸린다. 시속 약 45km다. 이 외 일반열차는 시속 15~20km다. 마라톤 금메달리스트가 42.195km를 2시간에 뛰니 황영조, 이봉주보다 북한 철도가 느린 셈이다.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는 철도가 경제성 있는 노선이 되기 위해 최소 하루 1000km를 주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노선은 북한에선 경의선 국제철도 외에 없다. 북한 철도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북한을 경유하는 국제운송회랑 구축은 불가능하다. 국제운송의 정시성, 경제성, 안전성, 확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도라산=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 철도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30일부터 18일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2018.12.18/뉴스1  (도라산=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 철도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30일부터 18일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2018.12.18/뉴스1
<현대화 수준에 따라 기간·비용 천양지차…'밑그림' 중요한 지금>



-남북이 철도·도로 현대화에 합의했다. 앞으로의 단계는.
▶️우선 현대화의 수준부터 정해야 한다. 기존 시설을 긴급 복구해 침목과 레일을 교체하는 긴급복구 수준인지, 고속화 철도 수준의 현대화가 될 지 여부에 따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의 차이가 발생한다. 철도를 어떠한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도 핵심요소다. 화물위주인지, 여객위주인지에 따라 건설 프로세스가 달라진다. 계획과 설계 단계 이전에 확실하게 합의, 정리돼야 할 문제다.

-현대화 수준이 합의된다면 비용에 대한 논의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철도를 복선으로 건설하는 데 1km에 약 450억 원이 투입된다. 남북이 현대화하기로 한 구간이 1200km다. 단순하게 남측 공사비를 적용하면 약 54조원이 필요하다. 토지구입 비용을 제외한 건설비가 약 36조원이다. 단순히 철도 건설에만 들어가는 비용이고 차량구입비나 발전소 현대화 비용은 별도다.

북한 철도를 활용할 만큼의 충분한 물동량을 확보할 수가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북한의 현재 및 장래의 산업 규모와 주변국과의 통과 물동량 등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 철도와 도로, 항공과 결합한 북합운송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일각에선 비용 문제를 우려한다.
▶️긍정적 측면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부터 북한이 최초로 '평양-원산' 고속도를 유료화했다. 톨게이트를 설치해 통행료를 받는다. 2015년엔 북한이 원산-금강산 118km 구간 철도 투자 제안을 하면서 처음으로 철도 사업에 대한 비용편익(BC) 분석치를 제시했다. 여태까지 대외적으로 공표한 바 없는 사업의 순현재가치(NPV), 내부수익률(IRR), 할인율 계산결과를 공개했다. 국제기준에 맞추려는 놀랄만한 변화다.

북한이 법률에서 ‘혁명의 고유한 전취물’이라 규정한 두 가지가 토지와 철도다. 이런 위상을 갖는 철도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북한이 토지를 제공하고 러시아가 철도 현대화에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톨게이트를 만들어 통행료를 받거나, 개발권을 주는 등 북한도 조심스럽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수십조원의 철도 현대화 비용을 한 주체가 다 부담하는 게 아니라 사업성이 있는 구간은 외국 자본으로 조달하거나 20~30년을 공동운영하는 등 다양한 비용 부담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 이런 논의가 시작돼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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