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제약 기술수출, 이제 제값 받자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19.0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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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제약업계에서 2015년은 한미약품의 해였다. 중간에 개발이 중단되거나 계약 내용이 조정되는 부침을 겪었지만 그해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금액은 8조원에 달했다.

계약 총액 규모도 컸지만 더 획기적인 건 계약금 규모였다. 전체 총액 가운데 일시에 받는 계약금이 거의 10%에 육박했다. 한미약품은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꾸준히 신약후보물질을 소개한 결과 다국적 제약사들로부터 유리한 계약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술수출료 총액 중 계약금 비중은 계약의 유불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술을 사려는 제약사가 많으면 총액이 커지고 계약금 비중도 높다. 개발 성공에 확신이 없고 제약사들의 관심이 덜하면 총액은 작고 계약금 비중도 낮다.

계약금 비중의 크고 작음이 내포하는 의미는 더 있다. 기술을 사간 제약사의 진의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약금이 형편없이 작을 때 보통 2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헐값에 기술을 사들인 뒤 아예 개발을 안 하는 것이다. 기술수출·도입계약은 독점개발 후 독점판매 계약의 다른 이름이다. 기술을 사간 쪽에서 개발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말해 유망한 기술을 사장해버리는 전략이다. 자신이 개발 중인 신약후보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됐을 때 이런 전략을 주로 구사한다.

또다른 하나는 개발에 성공할 자신이 없거나 허가를 받았을 때 시장성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경우다. 임상 진행은 더디고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2가지 경우 모두 매입한 쪽은 그다지 아쉬울 게 없다. 싼값에 미래 강력한 라이벌의 싹을 자르는 매몰비용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

결국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신약 개발 능력과 협상력 모두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가운데 한미약품 수준의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곳은 지극히 드물다. 계약금 비중이 5% 미만인 곳이 수두룩하다.


성과에 집착한 조급증부터 버려야 한다. 오랜 기간 성과에 목마른 기업으로서는 기술수출 총액 포장을 그럴듯하게 해서 ‘한 건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싶겠지만 서둘러선 안 된다. 이런 사례 하나하나가 모여 ‘코리아 바이오 디스카운트’를 만들 수 있다.

정부도, 주주들도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등쌀에 밀려 헐값에 기술을 팔고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기술이 죽어버렸을 때 누가 손해일까. 답은 뻔하다.
[우보세]제약 기술수출, 이제 제값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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