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것들

송해나(트위터 ‘임신일기’ 연재) ize 기자 2019.01.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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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란 여성이 아기를 낳은 역사가 아니고서는 구성조차 될 수 없다. 모두가 여성의 몸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그 많은 여성이 해온 일인데 나라고 못할 거 없다며 별 일 아니라 생각했다. 철저하게 계획했고 예상대로 임신했다. 임신·출산에 관한 책을 샀고 관련 카페에 가입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냈다. 임신 초기 입덧으로 몇 번 '웩-웩-' 하다가 배가 불러 뒤뚱거리는 시기를 안전하게만 보내면 아기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임신이 시작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내 자궁 어딘가에 착상했을 뿐인데 그 작은 변화에도 내 삶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임신 호르몬이 내 몸에 흐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지치고 울렁거렸다. 이유 모르게 사타구니가 망치로 맞은 듯 아팠고 애먼 밤중에 아픈 배를 잡고 굴렀다.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 병원에 가면 아기와 산모 모두 산과적 이상 없이 건강하단 얘길 들었다. 담당의는 자연스런 임신 증세라고 했다.

아기를 갖기 전엔 입덧에 대해 특정 음식의 냄새를 맡을 때 헛구역질을 한다는 이미지 밖에 없었다. 그저 임신 사실을 알려주는 순간일 거라 생각했다. 정규교육을 통해 배워본 적이 없고 미디어에선 아름다운 해프닝으로만 그려냈기 때문이다. 입덧에는 종류도 다양했다. 먹는 족족 토하는 입덧은 토덧, 속이 조금이라도 비면 울렁거려 계속 먹어야 하는 입덧은 먹덧, 침만 삼켜도 구역질이 나 계속 침을 흘리는 입덧은 침덧이다. 물론 의학적 용어도 아니고 각각의 입덧을 명확히 구분지을 수도 없지만 그렇게 구구절절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입덧의 상황들을 설명하는데도 힘이 든다. 먹지도 안 먹지도 못하면서 온 종일 울렁거리고 차라리 속에 있는 걸 다 게워 내는 게 편한, 그렇다고 게워 내면 또 속이 비어 뭔가를 섭취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괴로운 임신 초기의 상태를 나는 미처 몰랐다.



지옥 같은 입덧만 끝나면 임신기를 잘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궁이 커질 땐 내 배가 밖으로 나오는 방식으로도 커지지만, 원래 있던 내 뼈와 장기를 안에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자궁 공간을 늘려간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계속 커지는 자궁이 골반 인대를 압박해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이 계속되는데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한다고 나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걷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울면서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원에 가니 담당의는 아기는 제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고 산과의 이상소견이 전혀 없다고 했다. 산모가 아파 마음은 아프지만 임신의 자연스런 증세일 뿐 병리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서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고만 했다. 현대의학이 제 아무리 발달해도 산과적 이상 외에 임신한 여성의 고통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없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임신 후기는 그야말로 내 몸 덩어리와의 전쟁이었다. 목 아래부터 발 끝까지 뼈와 장기의 지형이 온통 바뀌어 혼자서는 눕거나 일어서지도 못했고, 살살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었으며, 배의 크기가 가늠이 잘 안 돼 움직이다 여기저기 멍들기 일쑤였다. 배가 커져 단순히 불편할 줄만 알았지 그 큰 배를 무거운 돌덩이로 누르는 듯한 수축이 시도 때도 없이 올 줄은 몰랐다. 자궁 수축이 고통이 심해 조기 진통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니 아기의 태동과 심박 모두 안정적이고 자궁 경부의 길이가 적당해 산과적 문제가 없단 얘길 들었다. 여기까지도 자연스런 임신 증세일 줄 몰랐다. 내 작은 몸통 안에서 아기가 커지니 내장기관이 모두 짜부라져 사라졌던 입덧이 재발하고, 물 한 모금만 먹어도 방광이 자극돼 수없이 화장실에 가야 할거라곤 임신 초기에도 몰랐다. 임신기 내내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이 괴로움이 끝나면 다른 괴로움이 왔다. 해결법을 찾아보려 병원에 가도 임신한 여성은 현대의학에 버림받았단 사실만 상기할 뿐이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만삭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겪었다. 회사를 오가는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내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임신기를 지냈다. 회사에선 다른 사람만큼 업무 성과도 못 내면서 야근도 안 하는 골칫덩어리로, 공공장소에선 느리고 방해되며 피하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내 본질은 그대론데 임신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적 계급이 이렇게 내려갈 줄은 정말 몰랐다. 국가는 임신을 대대적으로 장려하는것 같이 보였지만 현실적인 제도가 이렇게 빈약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고 여성의 삶은 여성이 선택하는 거라 믿으며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로 아기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임신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기를 갖고 낳은 것에 후회하지 않지만 임신이 진정한 여성의 선택이 되려면 임신 이후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모든 여성에게 정보로써 제공되어야 한다. 온 인류 역사 내내 이뤄진 임신인데, 이렇게까지 대중적 정보가 없는 건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몰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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