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로 국내 생산공장 설립"…협상가(Negotiator) 문재인의 힘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9.01.1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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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표류하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 성사를 위해 직접 중재에 나선 문 대통령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표류위기에 처했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현대차가 이제는 새로운 생산라인을 한국에 만들어야지 않겠냐"며 적극적인 주문을 하면서 그동안 결렬된 협상추진의 동력이 재차 마련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광주형 일자리를 도입할 수 있도록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더욱 모아주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된다면 정부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지난해 고용문제와 더불어 산업 전반을 통틀어 가장 핫한 이슈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투자협약식을 목전에 두고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표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언급하면서 다시 사업의 불씨를 지폈다.

이어 지난 13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새해 기자회견에서 "이달 말까지는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끝날 것 같다"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현대차와 노조 사이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차도 노조도 모두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그다지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현대차가 국내에 생산공장을 만든 것은 1996년 충남 아산에 공장을 세운 것이 마지막이고, 2013년 6월 광주의 기아차 설비 증설이 이뤄진 것이 전부다.

반면 지난 22년간 현대차그룹은 1997년에 터키(이즈미트)를 시작으로 1998년 인도(첸나이), 2002년 중국(베이징&옌청), 2004년 슬로바키아(질리나), 2005년 미국(앨라배마), 2007년 미국(조지아), 2008년 체코(노소비체), 2011년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2012년 브라질(피라시카바), 2016년 멕시코(페스케리아)에 이르는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이렇게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게 된 근본 이유를 따져보면 높은 임금 수준과 낮은 생산성, 관세를 비롯한 여러 수출장벽과 운송비 등의 비용, 현지화에 따른 세제 혜택과 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할 때 국내보다 훨씬 유리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차의 자동차 생산능력도 이미 해외 공장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져 총 904만대 중 해외 공장의 생산 능력은 570만대(63%)로 국내 공장 334만대(27%)에 비해 약 200만대 이상 많아졌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은 연간 약 10만대 규모의 경형 SUV를 생산할 계획인데, 당장 올해부터 현대차 울산 제3공장도 연간 10만 대의 경형 SUV 생산에 돌입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소형 SUV 시장 규모는 14만여대에 불과한데, 여기에 광주형 일자리 공장이 설립되면 초과공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결국 현대차 입장에서는 공급과잉이 초래될 것이 뻔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추진할 동기가 없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투자 협약식을 앞두고 협상이 결렬된 것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유예 문제가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들과는 달리 매년 임단협을 통해 연봉 등을 협상하기 때문에 자동차 공장은 평균 연봉 9000만원이 넘는 고연봉에도 임금협상과 파업은 마치 연례행사처럼 일어났고 이른바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른 모든 조건은 다 받아들여도 임단협 유예에 대해 노조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들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서 고용될 근로자와는 상관이 없는 기존 사업장 근로자인데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의 근로조건을 두고 결사반대를 하고 있는 격이다.

노조 입장에서도 반값 임금의 광주형 일자리에 임단협 유예까지 양보할 경우 향후 자신들의 임금 협상 요구도 어려워질 뿐 아니라 오히려 임금을 낮추라는 여론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기존 사업장의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의 임단협 유예를 결사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 협상이 다시 추진된다 해도 결국 현대차와 노조가 입장을 달리하는 임단협 유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여기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독일의 ‘아우토5000 프로젝트’가 정치적 해법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당시 폭스바겐 경영진의 ‘아우토5000’ 대한 제안을 노조는 거부했고, 폭스바겐도 독일이 아닌 원래 계획대로 동유럽에 공장을 세우기로 선회하면서 협상이 거의 깨질 위기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 당시 슈뢰더 독일 총리는 팔을 걷어 부치고 경영진과 노조를 폭스바겐 본사로 불러들여 직접 양측을 설득했고, ‘아우토5000’ 사업을 성사시켰다.

슈뢰더 총리는 협상 당시 경영진에게는 저임금 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본사의 기존 노동자의 임금조건은 절대 건드리지 않도록 약속을 받아냈다. 아울러 새로운 ‘아우토5000’ 공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인센티브 형식으로 노동자들에게 배분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숙련도에 따른 차등임금제 등을 도입하고 생산 품질에 문제가 생길 경우 무보수로 추가 근무하는 등 근로조건의 유연성을 수용하도록 했다.

앞선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현대차에 20여년간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았으니 광주에 자동차 생산라인을 설립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 성사를 위해 사실상 중재에 나섰다. 이로 인해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현대차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고, 표류하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추진 동력이 다시 마련됐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는 16일 입장문을 내고 "애물단지가 될 광주형 일자리를 즉각 중단하고, 차라리 군산공장 재가동으로 기존 유휴 시설을 활용하는 일자리 창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면 노동존중 정책과 공약을 파기하는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민주노총·금속노조와 연대해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임단협 문제 등으로 협상이 또 다시 난항을 겪는다면 이번엔 문 대통령이 노조 대표들을 직접 청와대로 불러서 설득을 하든지 중재나 압박을 하든지 해야 한다. 독일 슈뢰더 총리처럼 말이다.

일자리 사업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상징성이 높은 사업이다. 올해 대내외 경제상황도 이런 저런 이유를 따질 여유있는 상황도 아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북미간 봉착된 북한의 비핵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협상가'(Negotiator)로서 탁월한 중재 능력을 보여줬다. 이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서도 중재의 힘을 또 한번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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