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런데 중국은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잡은 후 연설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원고 분량만도 무려 A4용지 68매에 달한다. 고개를 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최고수뇌부의 연설을 경청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일례로 북한군 서열 1위로 거론됐던 현영철은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할 때 깜박 졸았고 나중에 불만표출 등 불경죄까지 겹쳐서 처형당했다.
중국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처럼 대통령 연설 중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 짓을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수많은 TV 카메라들이 착석한 대표들을 찍고 2층 방청석에는 무수한 내외신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연신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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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차 당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등록한 기자 수는 3000명이 넘었다. 깜박 졸다가 카메라에 찍히기라도 하면 가문의 영광인 당대표 선출이 순식간에 가문의 수치로 변할 판이다.
실제로 2300여명의 당대표들은 3시간 30분 동안 계속해서 자료를 뒤적거리면서 볼펜으로 줄을 치고 때때로 박수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장 전투적으로 서류를 뒤적거리는 사람들은 군복을 입은 인민해방군 대표들이었다.
그렇다고 2300여명이 정말 3시간 30분 동안 한 명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사실 2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100세가 넘은 혁명원로인 송핑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다. 그외 다른 사람들은 3시간 30분 동안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100세가 넘거나 전임 국가주석이어야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지도부가 착석한 연단은 의자간격이 넓어서 일어날 수 있지만, 2300여명의 대표들이 자리한 1층은 자리배치가 촘촘해서 중간에 앉은 사람은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 봉쇄됐다.
한국과 중국 국가수반의 연설 시간이 보여주는 의미는 뭘까. 다른 차이도 많겠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정치체제와 민주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만약 문 대통령이 국회에서 3시간 30분 동안 시정연설을 한다면, 끝까지 앉아있는 의원은 틀림없이 반도 안될 것이다. 특히 연설을 집중해서 듣는 사람은 그 중에서 반도 안될 게 분명하다. 대통령이 3시간 30분 연설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할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2300여명의 대표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연설을 들었다. 이는 중국의 민주화 정도가 낮고 권력 집중이 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특히 중국의 권력집중도가 시 주석 집권 이후 높아졌다. 연설시간도 이런 사실을 반영한다. 18차 당대회에서 당시 후진타오 주석은 1시간 40분 동안 연설을 했다.
그러나 1인 지도체제를 구축한 시 주석은 3시간 30분 동안 집권 5년 간 한 일, 그리고 향후 5년간 할 일을 2300여명의 대표들에게 귀가 아프도록 반복해서 주입했다. 시 주석의 정책 중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많겠지만, 적어도 시 주석의 체력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