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외로운 길에 대중은 극진한 대접으로 보답했다. 스폰서를 처음 구할 때 2000만 원을 받았던 그는 정점에서 수백 배, 수천 배 가치를 끌어 올렸고 스태프, 국민 할 것 없이 그를 진정한 ‘여왕’으로 대접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문재인 대통령이 선수촌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이틀 앞두고 심석희는 사라졌다. 코치의 폭력 때문이었다. 세계 1위라는 자부심이 강한 선수라면 그 자존심과 욕심 때문이라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폭력 사건을 은폐할 법도 한데, 심 선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존심보다 국가의 대의를 위해 다시 돌아온 심석희는 올림픽 트랙에 섰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금메달을 딴 뒤 무사히(?) 올림픽을 끝내는 듯했다.
심석희는 그러나 최근 코치의 성폭행까지 공개하면서 대중에게 충격의 충격을 안겼다. 그 소식을 접하고 가장 놀란 것은 ‘도대체 이런 ’멘붕‘ 상태에서 어떻게 경기를 치를 수 있었을까’하는 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부터 4년간 성폭력을 당하고, 6살 때부터 인연을 맺은 코치로부터 상습적 폭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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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이 일상처럼 돼 버린 그의 삶에 경기장은 ‘1등의 포상’으로 상처 난 자존심을 위로받을 유일한 도피처였을까. 아니면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무서운 폭력으로부터 대항할 최소한의 힘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무거운 폭력의 기억을 안고 출발선 앞에 선 그의 무표정과 고독의 또 다른 의미를 읽지 못한 게 내심 안쓰러울 뿐이다.
대한체육회가 최근 내놓은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최근 1년간 일반 등록선수 및 지도자들의 폭력 및 성폭력 경험 비율은 각각 26.1%와 2.7%였다. 국가대표급 선수 및 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은 폭력(3.7%) 및 성폭력(1.7%)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심석희 사건을 계기로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비율 못지않게 중요한 게 강도다. 전수조사를 통해 숫자를 헤아리는 것만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개인의 숨겨진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심 선수가 어떤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는지 가늠한다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