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 걷기 위해

머니투데이 이신주 작가 2019.01.20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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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단일성 정체감 장애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 <3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인기자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그들에게 우리의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눈에 비치는 사회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두 번째 걸음 – 같이 걷기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 열린 동굴과도 같은 것입니다. 동굴에 맺힌 수증기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웅덩이를 이루듯, 우리의 의식 또한 외부 자극을 받아들여 다양한 특성을 맺습니다. 이러한 특성이 모여 성격이 되고, 성격들은 다시 수증기가 웅덩이를 만들듯 ‘나’라는 하나의 인격을 빚어내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동굴 천정에 돋아난 하나의 돌출부, 이를테면 종유석 같은 것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은 웅덩이의 표면을 뒤흔들고, 종래에는 씻어낼 수 없는 흔적을 동굴 내부에 새기기 마련이지요. 한 줄기의 물방울이 빚어낸 그들의 정신은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하나의 인격만을 가지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1) 하나의 인격과 삶의 연속성

단일성 정체감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연속성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감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수십 년 동안 달리는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것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종착역에 바퀴를 누이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지요. 우리에게 있어 삶이란 다채로운 빛깔의 모자이크가 시간 축을 따라 늘어선 한 편의 설치미술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온전한 하루를 통째로 겪으리라 생각지 않으며, 침대에 몸을 뉘인 채 눈을 감으며 그다음 날의 아침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여러 개의 주(主) 인격 중 하나가 그 일을 대신할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하나의 인격이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한 것이지요. 그러나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온전한 삶을, 결코 늦추거나 피할 수 없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받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단일성 정체감 장애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매일 6~8시간 정도의 수면을 필요로 합니다. 일반인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산술적 잣대로 보더라도 하루의 삼 분의 일에 육박하는 시간을 가만히 누워 보낼 것을 강요받는 셈이지요. 물론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더라도 당장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재 끄트머리를 안쪽으로부터 좀먹는 한 줌의 흰개미가 끝내는 집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듯,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급속도로 누적되는 부하를 견디지 못한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빠른 시일 내로 알코올의 탐닉과 같은 이상 행동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를 거쳐 이들이 생리적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 진정한 의미의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다수의 의학자들은 이를 위에서 언급한 삶의 연속성과 큰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가 여러 인격으로 현실의 압박을 나눠 받는 것에 비해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그럴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빠르게 누적되는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그들의 뇌는 장시간의 집중적인 수면을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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