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임세원 교수 동생 "정신질환자 혐오는 안돼"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2019.01.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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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임세희씨 "사회적 낙인없이 치료받는 환경, 오빠가 남긴 뜻…죽음 헛되지 않길"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해자가 위협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달 31일 진료 중 환자에게 흉기로 찔려 사망한 고(故) 임세원(47) 교수의 동생 임세희씨가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임씨는 이날 오후 3시30분쯤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병원에서 확인해 준 팩트는 오빠가 두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도망쳐' '112 신고해'라고 말한 것"이라며 "우리는 그 영상을 아마 평생 기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귀하고 소중했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며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씨는 고인이 평소 부모님에게 충실했던 효자이자 좋은 아빠였다고 회고했다. 임씨는 "굉장히 바쁜 사람인데도 2주에 한 번은 꼭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며 "곶감과 굴비를 주문해서 택배로 보내고 맛있으면 더 사드리겠다고 했던, 저는 따라가지도 못하는 효자였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아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잘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했다"며 "언니(고 임세원 교수의 부인)가 직장이 있어서 바쁠 때는 오빠가 미리 시간을 조정해서 아이들을 돌봤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임씨는 "제가 오빠 없는 세상이 낯설고 정신없듯이 아이들과 언니는 더 큰 낯설음이 있지 않을까"라며 남은 가족들을 걱정했다.

하지만 임씨는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를 향한 혐오가 퍼지지 않기를 바랐다. 임씨는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우리 오빠처럼 이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진료권 보장과 안위도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질환을 빨리 극복하기를 동시에 원한다"며 "그래서 이 힘든 직업을 선택했고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분들이 현명한 해법을 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피의자의 범행 동기에는 "듣지도 않았고 질문하지도 않았다"며 "아마 그분(피의자)은 여기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된 고 임세원 교수의 빈소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차려진 빈소는 침통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임 교수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44분쯤 자신이 진료하던 박모씨(30)에게 살해당했다. 박씨는 진료 도중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놀라서 몸을 피하다가 복도에서 넘어진 임 교수의 가슴 부위를 수차례 찔렀다.

흉기에 찔린 임 교수는 곧장 응급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오후 7시30분쯤 숨졌다. 임 교수는 급박한 순간에도 간호사들에게 피할 것을 알리고 이들의 대피 여부를 확인하는 등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이 CCTV(폐쇄회로화면)상에 포착됐다"고 밝혔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박씨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있다. 박씨는 영장심사 출석 당시 취재진이 "왜 죽였나", "유족에 할 말이 없나" 등을 묻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박씨는 이르면 이날 중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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