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카풀 논란, 타협 목적부터 찾아라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2019.01.03 04:00
글자크기
조선 중기의 학자 율곡 이이는 국가 경영을 창업(創業)·수성(守成)·경장(更張)으로 나누고, 시기별 경영철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창업), 과업의 성과를 지키고(수성), 혁신을 추구할(경장) 때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제 때 할 일을 해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 혁신에 나서야 하는 시기에 지키거나 현재 과업을 이어나가야 할 때 새로운 일을 추진해선 안 된다. 잘못된 경영판단은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카카오 카풀(승차공유)을 둘러싼 갈등은 경장과 수성 세력이 맞붙은 사례다. 카카오는 지난해 초부터 카풀 중개 서비스를 준비했으나, 택시업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정식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정부·여당이 제안한 대타협기구는 시작부터 난항이다. 택시단체들은 대타협기구 참여 조건으로 카카오의 카풀 시범 테스트 중단을 요구했으나, 카카오는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타협안 논의는 커녕 첫 만남이 언제쯤 이뤄질지조차 기약없다. 갈등 장기화로 택시·카풀업계뿐 아니라 수요자인 승객들의 피로감도 상당하다.
[기자수첩]카풀 논란, 타협 목적부터 찾아라


우여곡절 끝에 대타협기구가 꾸려졌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다. 정부·여당은 택시단체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했다. 법인택시 사납금 폐지, 완전월급제, 부분적 합승 허용 등이다. 택시와 카풀이 상생할 수 있다면서도 카풀 허용의 전제조건으로 택시업계 지원책을 내민 셈이다. 모빌리티 산업 혁신에 대한 정부·여당의 정책 의지가 그만큼 모호하다는 얘기다.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 변화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지 명확한 국가 정책 방향부터 제시돼야 한다. 정책 목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중재합의는 대부분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표면적인 갈등만 덮은 채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카풀 갈등은 수성과 경장 세력이 부딪친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 신·구 산업이 충돌하면서 정부가 중재해야 할 갈등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때마다 지금과 같은 식이면 곤란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