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직 당분간 유지…체면 구긴 과기정통부(종합)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8.12.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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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 직무정지 요청에 이사회 "섣부른 결정 안해" 결정 유보…정부 출연연 인사정책 추동력 잃을 듯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 참석해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 참석해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이사회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요구한 신성철 총장 직무 정지 결정을 유보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장 직무정지 여부를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치적 표적감사 아니냐"는 과학기술계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카이스트는 과기정통부의 직할기관이다. 때문에 이번 이사회의 유보결정을 이례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과기정통부가 애초부터 무리한 감사와 징계안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자초했다는 평이다.



◇카이스트 이사회, 신총장 직무정치 유보 결정 왜?

카이스트는 14일 오전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정기 이사회(이사장 이장무)를 열고 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안을 논의했다. 장장 3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벌인 결과, 투표를 통해 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보류키로 합의했다. 이사회 안건으로 재임 중인 총장의 직무정지 안건이 상정된 것은 KAIST 개교 47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이사회에는 정부 측 당연직 이사인 양충모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대신 장윤정 과장, 김규태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 대신 조홍선 사무관이 참석했다. 10명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는 모두 예정대로 참석했다.

이사회 측은 회의 직전 5분간 회의장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사회 사회를 맡은 김보원 KAIST 사무처장은 회의 시작 전 “다들 표정이 어둡고 무거워 이사회 진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회의 시작 2분전 자리에 앉은 신 총장은 굳은 표정으로 간혹 물을 마시는 등 묵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오해받을 것 같아서 이사들과 악수도 못하겠다"며 참담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신 총장 직무정지 의결안은 이날 상정된 10개 보고·의결 안건을 진행한 후 가장 마지막 순서로 다뤄졌다. 신 총장은 자신의 직무정지 의결 안건이 논의되기 직전 회의실을 퇴장해 결과를 기다렸다.


이사회는 과기정통부 측 당연직 이사인 구혁채 미래인재국장으로부터 과기정통부의 입장을 듣고, 참석 이사들의 의견을 차례로 청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과기정통부·기획재정부·교육부 등 정부 측 당연직 이사들은 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다른 선출직 이사들은 신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정지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장무 이사장은 이 안건 결정을 유보하고 차기 이사회에서 재논의하는 안에 대해 이사들의 의견을 물어 과반수 찬성으로 유보를 결정했다. 신 총장은 다음 이사회때까지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차기 정기 이사회는 내년 3월 열린다.

이사회 결정 직후 신 총장은 “오늘 존경하는 이사장과 이사님들, 정부 관계자 여러분들의 결정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대학을 경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 참석해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 참석해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과기계 "애초부터 무리한 결과"…곤혹스런 과기정통부

지난달 과기정통부는 신 총장을 횡령과 배임 의혹으로 카이스트 이사회에 총장 직무정지를 요청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신 총장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이던 지난 2013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공동연구계약을 맺으며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장비 사용료 22억여 원을 지급했고, 이 중 일부가 해당 연구소에 근무하던 신 총장 제자인 임 모 박사의 인건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과기정통부는 이같은 감사결과를 토대로 신 총장을 지난달 28일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지난달 30일 카이스트 이사장에게 신 총장의 직무정지를 요청했다. 신 총장과 LBNL은 기자간담회와 공식 서한을 통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동연구를 진행했다고 반박했다.

과학기술계는 과기정통부 조치에 대해 "정치적 표적 감사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신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인데다가 영남대 이사를 거쳤다.
카이스트 교수협의회는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직무정지 요청을 철회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 총장 직무정지 거부를 촉구하는 성명서에는 지난 13일 기준 KAIST 교수 257명 등 과학기술계 인사 810명이 참여했다.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도 신 총장 직무정지 요청을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국제적으로 큰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신 총장을 둘러싼 과기계 내홍을 비중있게 다뤘다. 네이처는 “(과기정통부의)신 총장 직무정지 요구는 정치적 의도로 의심된다”며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기관장을 물러나게 하는 관행이 있다"고 보도했다.

감사결과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카이스트 이사회의 총장 직무정지 요청 유보 결정까지 나오자 과기정통부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카이스트 뿐 아니라 향후 진행될 신하 출연연구기관장들의 인사와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무부처로서의 추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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