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에서 본 그 책 사야지" 여전한 미디어셀러 파워

머니투데이 황희정 기자 2018.12.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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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출간된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드라마 노출 후 베스트셀러 역주행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 등장한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사진 출처=방송 화면 캡처tvN 드라마 '남자친구'에 등장한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사진 출처=방송 화면 캡처


지난 5일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김진혁(박보검 분)이 차수현(송혜교 분)에게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선물했다. 이어 6일 방송분에서 수현은 아버지에게 이 시집을 선물 받으며 다시 한번 진혁을 떠올렸다. 드라마에서 이 시집은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로서 손색이 없었다.

드라마에 적절히 녹아든 덕분일까. 이 책은 영풍문고 집계기준 12월 첫 주 종합 베스트셀러 19위에 올랐다. 2015년 출간된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시인 나태주의 시 가운데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는 시들만 모아 엮은 책이다. 출간 3년이 지나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한 것은 출판시장에 미치는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방증한다.



미디어에 노출된 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을 가리키는 '미디어셀러'(media seller)는 어제오늘 등장한 게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2년 MBC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코너에서 선정한 도서는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중 '아홉살 인생'(1위), '봉순이 언니'(2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3위), '괭이부리말 아이들'(5위)가 교보문고 집계기준 2002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14년 전 출간된 시집 판매량이 드라마에 노출된 뒤 방송 직후 4일간 12배 뛰기도 했다. 올초 방영된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 등장한 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의 한 구절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이 급증한 것이다.



'2017년 국민도서실태조사'(성인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인터넷, 베스트셀러 목록, TV, 유명인 추천에 따라 책을 산다는 경우가 30%를 넘었다. /자료 제공=문화체육관광부'2017년 국민도서실태조사'(성인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인터넷, 베스트셀러 목록, TV, 유명인 추천에 따라 책을 산다는 경우가 30%를 넘었다. /자료 제공=문화체육관광부
최근 미디어셀러 경향을 보면 대부분 드라마에서 노출된 서적이 인기를 끄는데 책 '코스모스'의 경우 예외적으로 예능에서 언급해 주목받은 사례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유시민은 무인도에 갇히면 가져갈 1권의 책으로 '코스모스'를 추천했는데 방송일 직후 2주간의 판매량이 직전 동기 대비 600% 이상 증가했다.

미디어셀러 현상이 계속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선택할 때 주로 어떤 정보를 이용하느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성인 기준)에 따르면 책을 살 때 '본인이 직접 선택한다'고 답한 이들은 29.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인터넷 15.3% △TV나 라디오 7.9% △베스트셀러 목록 7.7% △유명인 및 전문가의 추천 4.9%도 적지 않은 비율을 기록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상 필요할 경우 책이 등장하는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자칫 홍보효과만 부각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출판시장에 PPL 협찬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울 수도 있다.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셀러가 침체된 출판계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나 자생력을 잃게 할 수도 있다"며 "책 PPL의 경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부 대형 출판사만 가능한 구조"라고 우려했다. 이어 "하지만 파급력이 큰 만큼 이 같은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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