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꿈꾸는 광주형 일자리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2018.12.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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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자동차산업 종사자들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되는 3500만원 연봉으로 광주에 완성차 공장을 지어 1만2000여개 일자리를 직간접으로 창출한다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현대차 입장에서는 이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애초 포기하는 게 좋을까.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적 타협을 기반으로 혁신적 노사관계와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광주’를 만듦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이상적이고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포용적 성장을 내세우는 문재인정부 입장에서 그렇다.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며 막판에 틀어지지 않았다면 지난 6일 투자협약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조선과 자동차산업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거제, 군산 등으로 확산할 여지도 있다.

이 같은 이상적 모델의 광주형 일자리가 좌초된 것은 외견상으로는 노동조건 때문이다. 노동계는 광주 완성차 공장이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약 5년간 임금·단체협약을 유예하는 데 강력 반대했고, 광주시가 이를 받아들여 협약안에 넣자 이번에는 현대차가 수용할 수 없다고 나서면서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5년간 임금·단체협약 유예를 수용하고 현대차가 이를 신뢰회복 조치로 받아들여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협약이 체결된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망은 비관적이다.

우선 광주형 일자리에서 논의되는 것같이 임단협을 유보해 일정기간 임금을 묶어두겠다는 것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근로자들의 채용도 이루어지기 전에 당사자들도 아닌 외부인들 간에 체결된 협약이 법적 효력을 가질 리 없다. 더욱이 현행법상 단체협약의 법적 효력은 2년이다. 물론 당사자간 협약은 아니지만 사회적 합의라는 점에서 나중에 노사에 간접 압박은 될 수 있겠지만 문서로 맺은 협약도 바로 뒤집고, 불법 파업을 일삼는 한국적 노사풍토에서 5년간 임단협 유보 약속이 과연 유효할지 모르겠다.

연봉 3500만원의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려면 근본적으로 광주 빛그린 국가산업단지에 건설되는 광주 완성차 공장이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부정적·회의적 요소가 너무 많다.


무엇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빛그린 광주 완성차공장은 주주 구성이 광주시와 현대차에다 앞으로 KDB산업은행 등이 추가될지 모르겠다. 공기업도 아니고 사기업도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기업에 가까운 지배구조다. 이런 구조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오로지 시장원리에 따라 경영을 하는 현대차조차 위기를 맞은 현실에서 광주시나 시민단체 노조 등이 경영을 주도하게 될 광주 빛그린 공장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세계 어디에 성공한 공기업 자동차회사가 있는가. 광주형 일자리는 몽상가들의 이야기다.

연초 한국GM은 30만대 생산능력의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도 자동차산업의 침체와 시장 포화를 감안해 감산하고 있다. 게다가 자동차 시장은 내연기관차 시대에서 수소차 전기차 시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빛그린 광주완성차 공장은 이런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선택할 길도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압박이 엄청 부담스럽더라도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어라. 차라리 여기에 투자할 530억원을 광주지역사회에 기부하는 게 낫다. 그게 두고두고 화근을 없애는 길이다. 경제는 이상으로만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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