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박병대·고영한, 공모성립 의문"…영장 모두 기각(종합)

뉴스1 제공 2018.12.07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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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필요성 인정 안돼"…양승태 향한 수사 제동
검찰 "상급자에 더 큰 책임 물어야…대단히 부당"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김정현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검찰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8.12.7/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검찰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8.12.7/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이 7일 구속을 면했다. 이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두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병 확보 후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하려던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현 단계까지의 검찰 수사로는 두 전 대법관의 관여범위 등에 따른 공모관계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봤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16기)이 구속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과 상식에 어긋나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을,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고 전 대법관을 상대로 전날(6일) 오전 10시30분부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이날 0시37분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해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돼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또한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명 부장판사도 고 전 대법관에 대해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졌다"며 "현재까지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사유와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인 박·고 전 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라며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박병대(위), 고영한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2018.12.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이광호 기자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박병대(위), 고영한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2018.12.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이광호 기자
두 전직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재직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70·2기)과 함께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깊이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실무진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팀은 지난 3일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에게는 위계상 공무집행방해, 특가법상 국고손실 혐의도 적용됐다. 전직 대법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으로 근무하며 Δ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Δ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원 지위확인 Δ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개입 Δ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등 재판개입을 포함해 30여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사실이 담긴 검찰의 영장청구서는 A4 158쪽에 달한다.

검찰은 선임이었던 차한성 전 대법관(64·7기)에 이어 박 전 대법관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과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청와대·외교부와 이른바 '소인수 회의'에 참석, 외교부 의견서 등을 이용해 재판을 지연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결국 원고 승소 판결을 뒤집으려던 청와대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법관 해외파견 등에 협조를 구한 것을 주요 혐의로 봤다.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한 정황도 있다. 2014년 12월 정당해산 뒤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해 소속 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행정처가 나서 '국회의원의 지위존재 여부 판단권이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담당 재판장에게 전달해 하급심 판결을 유도한 것이다. 항소심 과정에서는 전산조작으로 특정 재판부에 사건을 배당하도록 요청한 정황도 포착했다.

비선 의료진 특허소송 등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관심사건 재판정보나, 탄핵심판 국면에서 헌법재판소의 평의내용 등 내부기밀 유출에 관여한 혐의도 있다. 상고법원 등 사법부 역점사업 추진 시기에 허위 증빙 서류를 작성해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따내 법원장 등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등 비자금으로 전용한 것으로도 검찰은 파악했다.

박 전 대법관 후임으로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으로 근무한 고 전 대법관 역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외에도 법관 비위 의혹을 무마하려 Δ부산 스폰서 판사 Δ정운호 게이트 Δ법원집행관 비리 사건 등에서 수사기밀을 유출하는 등 20개 안팎의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서는 A4 108쪽 분량이다.

검찰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부산 소재 건설업자 정모씨 사건과 관련해 문모 전 부산고법 판사가 향응·접대를 받아 재판부 심증 등 정보를 누설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고 전 대법관이 징계는커녕 당시 부산고등법원장에게 직접 전화하고 관련 문건 작성을 지시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 것으로 봤다.

아울러 두 전 대법관은 공통으로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시킨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고 전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일선 판사들을 통제하려 했다는 의혹이 대법원 진상조사 결과 일부 사실로 드러나자 행정처장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박·고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후배 법관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는 취지로 이같은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 진술이 행정처 실장급 이하 실무진 판사들 진술과 다른 부분에 대해 사실관계를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혐의를 다듬어 왔다.

전날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도 박 전 대법관은 혐의사실 전반을 부인하는 태도를 고수하며, 법원행정처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한 것은 개입이 아니기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변론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았다'며 '청와대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나를 국무총리로 보내달라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거절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으나 검찰은 이같은 정황이 역으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유착을 방증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고 전 대법관 역시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 등 일부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주요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 '청와대를 상대로 한 재판거래는 없었다' '주도적으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지 않았다'며 선을 긋고, 박 전 대법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혐의가 가벼워 구속 사안까지는 아니라 강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대법관은 이날 오전 1시10분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재판부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취재진의 '(청와대의) 국무총리 제안은 대가성이 없었다고 생각하나', '사법농단 사태가 후배들이 알아서 벌인 일이라 생각하나', '법관 블랙리스트 지시 안 하셨나' 등 질문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아들과 함께 귀가했다.

고 전 대법관도 오전 1시16분쯤 나와 취재진을 향해 "추위에 고생이 많다"고 말한 뒤 '전직 대법관 신분이 (기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증거 삭제 정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양 전 대법원장과 다르다는 건 어떤 의미로 한 이야기인가', '이 모든 게 전 대법원장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책임이냐' 등 질문에는 대답없이 친지와 함께 구치소를 떠났다.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원은 이른바 '방탄법원'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무 연결고리 역할을 한 임 전 차장 선에서 '꼬리자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정치권과 소장 법관들을 중심으로 한 법관탄핵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은 기각 사유 분석과 동시에 추가 수사를 이어가며 재청구 여부를 고심할 전망이다. 법원이 두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단서가 나오지 않는 한, 재청구를 하는 방안보다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르면 이달 중순쯤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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