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유성기업지부 조합원들의 임원 집단폭행 사건을 계기로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예전에는 과잉진압이 문제가 됐다면 요즘은 인권침해를 우려한 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도마에 오른다.
법이나 제도가 문제라기보다 당사자인 경찰이 법을 집행할 정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측면도 간과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살펴본 경찰의 물리력 행사 매뉴얼이 주먹구구식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현행 매뉴얼은 20페이지 분량인데 연구에서는 이를 70페이지 정도로 늘려달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매뉴얼이 아주 쉽고 간편하면 좋겠지만 공권력 행사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현재 경찰이 갖고 있는 장구는 권총, 테이저건, 가스분사기, 경찰봉 등 상당히 다양한데 매뉴얼에는 기껏해야 권총이나 테이저건 사용법 정도밖에 언급돼있지 않습니다. 신체적 물리력 행사나 언어적 통제 매뉴얼도 전혀 없고요. 그나마도 인권 침해적 요소가 많아서 매뉴얼만 따랐다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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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매뉴얼에 따른 훈련, 교육, 평가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사들이 수술에 들어가기 위해 인턴, 레지던트 등 긴 수련 과정을 거치듯 경찰도 올바른 장구 사용을 위해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장구 중 가장 현장대응력이 떨어지는 게 총기입니다. 총기 훈련이 1년에 2번 있지만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15m 거리에서 고정된 대상물을 쏘는 훈련만 하다가 밤중에 뛰어다니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요? 경찰들 입장에선 1차 방정식을 풀고 시험장에 갔더니 3차 방정식이 나온 꼴입니다."
총기의 위험성 때문에 대안으로 나온 테이저건은 훈련조차 쉽지 않다. 이 교수는 "테이저건 사격훈련은 전무한 수준"이라며 "한발을 쏘는 데 드는 카트리지 비용만 4만5000원 수준이라 권총(300원)에 비해 매우 비싸다"고 말했다.
타격무기인 삼단봉도 경찰들이 사용을 꺼려 하는 장구다. 이 교수는 "반드시 타격이 아니라도 쓸 수 있는 용도가 많다"며 "미국을 예로 들면 범인이 연행되지 않으려고 버티면 삼단봉으로 체포 대상을 밀고 잡아당기는데 이러한 용도를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로 73년 동안 사용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인권침해, 피소 가능성 등으로 경찰들이 장구 사용을 꺼려 한다는 반박도 있다. 이 교수는 "이 역시 경찰의 허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5년간 경찰이 물리력을 사용하다가 징계를 받은 건수는 고작 3건에 불과했다"며 "이 마저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에 명시된 독직폭행(재판, 검찰, 경찰 등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가혹한 행위를 가하는 것)에 가까워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장에 맞는 훈련과 평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장구 사용보다 이를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라며 "현장에서 가장 쓸모가 많은 '장비 없이 문제 상황을 종결시키는 능력' 같은건 공부하지도 않고 평가 대상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매뉴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