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남은 시간 5분…"수능 시험지가 필요해"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18.11.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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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주세요, 수능-②]수험생, 수능 시험 막바지 수험표에 답 적느라 바빠…평가원 "시험지 회수 역시 수험생을 위한 조치"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사진= 이미지투데이/사진= 이미지투데이


[빨간날]남은 시간 5분…"수능 시험지가 필요해"
대학생 윤모씨(24·남)는 4년 전 치른 수능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당시 윤씨는 시험지에 적은 답을 수험표에 옮겨 적느라 진땀을 뺐다. 시험을 마치면 시험지는 회수되기 때문. 윤씨는 "시험 시간은 짧은데 답을 옮겨 적을 시간까지 고려하느라 어려운 문제에 더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평가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학교와 도서관, 독서실은 막바지 준비에 여념 없는 수험생들의 열기로 뜨겁다. 수능을 코 앞에 둔 만큼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험시간 관리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고 검토와 OMR 마킹까지 끝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수험생과 수능 경험자들은 정작 시험시간이 평소보다 5분 정도 짧다고 토로한다. 시험지를 집으로 들고 올 수 없어서다.



◇교사·학생 "문제 풀기도 부족한데…."
수능을 한 달 앞둔 지난달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험지를 수험생에게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자신을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밝힌 청원자는 "수험표 뒤에 붙일 스티커를 배부하며 문제풀기에도 바쁜 수험생에게 답을 적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며 안타깝다는 심정을 전했다.

이어 "자신이 푼 시험지를 배부하면 끝날 일을 왜 몇십 년간 반복하고 있는걸까. 다른 국가는 시험지를 배부해 스스로 채점할 수 있게 한다"며 "문제풀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수험표에 답을 적어야 하는 구시대적인 활동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자의 말대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을 치른 수험생에게 시험지를 배부하지 않는다. 각 과목 시험이 끝나면 수험생들의 문제풀이 과정과 답이 쓰여진 시험지는 감독관이 회수한다. 이를 알고 있는 수험생들은 시험이 종료될 때면 고사장에서 필기구와 시계 외에 유일하게 지참할 수 있는 수험표를 꺼낸다. 수험표 뒷 면에 자신의 답을 기입하기 위해서다.



◇수능 준비물, 수험표에 붙일 가채점 스티커
그렇다고 이 작업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80분의 시간이 주어지는 국어와 영어의 경우 문항 수가 45개에 달하기 때문에 옮겨 적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면 1분에서 길게는 수 분이 걸리기도 한다. 시험 시간이 30분에 불과한 한국사, 사회·과학 탐구의 문항 수는 20개라 시간이 더 빠듯하다. '고작 몇 분인데 뭘'이라며 간단하게 치부할 수 있지만 대학 입시의 가장 중요한 관문인 수능에서 이 시간은 수험생을 압박하기 충분하다.

지난해 수능을 본 대학생 김모씨(20·여)는 "학교에서 (시험지 회수를) 미리 알려줘서 대비하고 있었다"면서도 "시험 막바지에 수험표에 내가 쓴 답을 적었는데 아무래도 집중력도 떨어지고 시간을 뺏기는 느낌이 들어 초조했다"고 말했다. 곧 수능을 치르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김모양(19·여)도 "문제 풀기도 바쁜데 수험표에 답을 적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를 마친 학생이 자신이 시험 중 적어온 답을 보고 가채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뉴스1지난해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를 마친 학생이 자신이 시험 중 적어온 답을 보고 가채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뉴스1
이 때문에 최근 학교나 학원에서는 수험생들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적을 수 있게 '가채점표' 스티커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한다. 수험표 뒤에 붙여 편하게 적으라는 것.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험생들은 '결국 문제 풀 시간을 쪼개 적어 내려가는 것은 똑같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게다가 고사실을 책임지는 감독관에 재량에 따라 해당 행위가 허락되지 않을 때도 있다.


◇답 적는 이유? "가채점해야 대학가지"
이렇게 수험생들이 수험표에 자신이 쓴 답을 적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가채점 때문이다. 시험 직후 올라오는 답에 맞춰 가채점을 해야 자신의 대학입시 전략을 가늠할 수 있다. 정식 수능 성적표는 다음달 5일에 발표되지만 수능 직후 논술고사를 비롯, 본격적인 대학 입시가 시작되기 때문에 수능 최저등급 충족여부 등 본인이 어느정도 성적을 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각 영역 시험이 종료되고 나면 인터넷을 통해 시험별 답안과 함께 시험지를 확인할 수 있어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장에서 자신이 정확히 어떤 답을 기입했는지 모른 채 기억에 의존해 채점한다면 가채점 정확도가 떨어져 낭패를 볼 수 있어 수험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시간을 할애해 수험표에 답을 적는다. 대학생 이모씨(20)는 "1점만 달라도 당락이 바뀌기 때문에 답을 기억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물론 10년 전 수능을 치른 수험생도 시험지 회수에 의문을 보였다.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올해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물론 10년 전 수능을 치른 수험생도 시험지 회수에 의문을 보였다.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말해줘
이처럼 시험지 회수가 수험생들의 고충을 만들지만, 수험생 대부분은 정확히 왜 시험지를 걷어가는 지 알지 못한다. 인터넷에는 시·청각, 뇌병변 등 장애인 수험생의 시험 시간이 일반 시험 시간보다 더 길기 때문에 문제유출 우려가 있어 시험지를 회수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대학생 윤모씨(24)는 "시험지 회수에 대한 대비만 했을 뿐, 회수 이유를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 동안 따로 명확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수능을 담당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은 수험생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평가원 관계자는 "수험생이 작성한 OMR 답안에 오류가 있거나 수험생 부주의로 답안이 잘못 표기되는 등의 문제를 생길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거자료로 회수한 시험지를 활용한다"며 "(시험지 회수로) 불편을 호소하는 수험생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양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시험지 회수 역시 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시험 진행과 수험생 보호 방책이라는 것. 실제 평가원은 수능 직후 1년 동안 시험지를 보관하며 수험생의 이의신청 등의 있을 경우 시험지와 답안지 확인·대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1년이 지나 별 다른 특이사항이 없으면 시험지를 폐기한다.

이같은 설명에 수험생과 수능 경험자들은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다. 대학생 김모씨(20)는 "OMR 답안에 마킹하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어려운 수능인데 가채점 답을 적느라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수험생은 지친다"고 말했다. 수험생 김모양(19)은 "모의고사는 시험지를 걷지 않으면서 수능 시험지는 회수한다"며 "일관된 방침과 명확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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