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가짜뉴스를 대하는 공자의 자세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2018.10.29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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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을 따라갈 수 없고, 세월이 기다려 주지 않아 두렵다. 늙음이 한발 한발 다가오는데 훌륭한 이름 남기지 못할까 걱정이다. 아침이면 목란에 구르는 이슬 마시고 저녁엔 가을국화의 시든 꽃잎으로 허기를 채운다.”

중국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 굴원이 쓴 초사 ‘이소'(離騷)에 나오는 구절이다. 가을에 어울리는 낭만주의의 서정성 높은 작품이지만 사실은 정치적으로 추방당한 굴원이 자신의 울분을 표현한 글이다.



“나는 실의에 빠져 이 시절에 맞지 않아 외로이 곤궁하게 지낸다. 마음을 굽히고 의기를 눌러 남이 허물을 들춰내도 참고, 욕을 해도 견디며 물리친다. 그 많은 사람들 일일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설득시킬 수도 없는 일, 뉘라서 내 마음을 이해해주겠나”

굴원은 또 다른 초사 ‘구장’(九章)에서 그 유명한 말을 하기에 이른다. “많은 사람의 입은 단단한 쇠까지도 녹여버린다. 뜨거운 국물에 입을 덴 사람은 차가운 나물도 불어서 먹는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굴원은 역사적으로 가짜뉴스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세상 사람들이 끼리끼리 패거리가 돼 상대를 공격하고 놀아나는 상황에서 외톨이가 된 굴원은 “이젠 죽어 은나라의 현인 팽함이 계신 곳을 찾아 가겠다”며 멱라수에 몸을 던진다.

‘뭇 사람의 입은 쇠를 녹이고 그 쌓인 헐뜯음은 뼈까지 녹인다’(중구삭금 적훼소골, 衆口鑠金 積毁銷骨)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뜬소문일지도 모른다.

가짜뉴스에 당한 사람은 굴원에 그치지 않는다. 공자도 가짜뉴스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논어 ‘옹야’(雍也)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위나라의 미녀를 만난 일과 관련해서다.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상대적으로 위나라에서 오래 머물렀다. 위나라는 공자를 오래 있게 해 국정을 맡길 생각도 했기 때문에 제자들 중에는 공자가 위나라에서 권력을 얻고 싶어 한다고 의심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가 위나라 제후가 총애했던 미모가 아주 빼어난 왕비 남자(南子)를 만나버린 것이다. 그러자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다. ‘옹야’ 장에는 제자들 가운데 성격이 괄괄하기로 유명한 자로(子路)가 불쾌한 나머지 공자를 몰아붙여 난감하게 만드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응과 입장은 분명했다. “너희들은 남이 함부로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믿지 말아라. 헛소문은 지혜로운 자에게서 그친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듣자마자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희들의 견해와는 다르다. 만일 참으로 죄악이 극도로 큰 사람이라면 하늘의 뜻도 그를 버릴 것인데 하물며 사람이겠느냐. 너희들이 남자(南子)에 대해 이렇게 못마땅해 할 이유가 없다.”(南懷瑾, ‘논어강의’)

공자가 강조한 것은 다른 사람의 헐뜯음이나 칭찬에 동요하지 말고 자신의 행위만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평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본분을 잊지 않으면 남이 뭐라 하든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멱라수에 몸을 던진 굴원과 달리 가짜뉴스를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이랬다.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이나 총리의 북한 찬양설 같은 SNS와 인터넷상의 가짜뉴스들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강력한 단속과 입법 강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진보적 시민단체들까지 표현의 자유 위축 등 우려를 표명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에 대한 정답은 2500여년 전 공자님 말씀에 나와 있다. 다른 사람의 헐뜯음에 동요하지 말고 자신의 행위만을 묻는 것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대단히 어렵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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