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염전주가 때린 것을) 동네 사람들도 다 알았어요?"
"네."
"왜 신고 안했어요?"
"신고를 하면 죽여쁜다고…(노임을 왜 안주냐고 했더니) 돈이 없다고…" (염전노예 피해자 김모씨의 법정 진술 중)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17일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김모씨 등 3명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마지막 변론을 열었다. 지적장애 3급으로 10여년간 염전에서 일을 했다는 피해자 김모씨는 이날 직접 법정에 나와 당시 상황에 대해 이같이 진술했다.
하지만 "지자체 복지 담당 공무원들도 제대로 공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주장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증거도 부족하다"며 전남 신안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머지 원고 7명의 손해배상 청구도 같은 취지로 기각했다.
김씨가 염전에서 나온 것은 지난 2014년이다. 하지만 이 전에도 김씨가 염전을 나올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2011년 경찰은 내사를 통해 김씨의 상황을 확인했고, 당시 김씨는 지방고용노동청 조사를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경찰은 염전주에 대해서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후 2014년 '염전노예'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고 나서야 김씨는 염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김씨 측 대리인은 당시 노동청 조사에 대해 "첫 조사에서는 노동청에서 고용주가 '먹이고 입혀줬는데 무슨 소리냐'고 해서 돌려보냈고, 돌아가는 길에 폭행을 당했다"며 "두 번째 조사를 받을 때는 맞았던 기억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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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과정에서 1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언들이 확보됐다. 관련자들의 서면 증언을 받는 과정에서 2011년 신의파출소에서 근무했던 경찰관이 '(염전) 인부들을 관리하는 장부가 따로 있었고, 그 장부에 면담 기록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신안 지역의 경찰관들이 이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김씨 등을 대리한 원곡 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는 "서면 증언을 보고 면담기록부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폐기처분했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전남지방경찰청과 목포경찰서 등은 면담기록부 제출 요청에 "면담기록부가 실질적인 관리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해 기존에 작성·보관했던 면담기록부를 폐기했다"고 답했다.
김씨 측은 "근로감독관과 경찰관 등이 염전에서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라며 "국가에 대한 책임 인정 없이는 이같은 학대 범죄는 또다시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염전노예 사건은 전남 신안군 신의도의 염전에 갇혀 수년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혹사당하던 한 지적장애인이 2013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구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당국의 전수조사 및 경찰 수사가 이뤄졌고 밝혀진 피해자만 63명에 달한다.
재판부는 다음달 23일 오후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