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북경협,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머니투데이 정일영 IBK북한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 2018.10.11 14:39
글자크기
정일영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 IBK경제연구소 제공정일영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 IBK경제연구소 제공


위험천만한 북미간 대결이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협상모드로 전환된 이후 한반도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중단된 남북경협을 재개하고 대륙을 향한 우리의 꿈이 곧 실현될 것만 같은 달콤한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이 한반도의 풍요와 번영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 여전히 난제들로 가로막혀 있듯 남북이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려나가는 것 또한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남북경협을 준비해야 한다. 대범하게 상상하되 기초를 튼튼히 다져 흔들리지 않는 경제협력의 틀을 세워야 한다. 이렇게 질문하자.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경협은 왜 제자리걸음을 걸어 왔을까. 지금까지 남북경협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이었나.



휴전체제를 유지하는 한 남북 사이엔 어떠한 형태든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발생 가능한 충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다. 지금까지 남북경협은 남북관계의 부침 속에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정권교체는 이전 정부가 추진한 대북정책의 중단을 의미했고 남북관계는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경협에 참여한 경제주체들은 피해를 감내해왔다.

새로운 한반도 경제지도를 구상하는 지금, 남북관계의 법제화가 강조되는 이유 또한 남북관계의 불안정, 정치적 리스크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로부터 시작된다. 다만 남북합의서가 법적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경협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남북은 2013년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체결해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했지만 결국 개성공단의 폐쇄를 막지 못했다.



남북경협 보장을 위한 위한 법제화는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먼저 남북합의의 법적 효력을 제고해야 한다. 현재 남북합의서는 그 법적 효력이 모호한 상태에서 신사협정에 준해 상호간의 신뢰에 의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은 각각의 국내 법률로 남북합의서의 법적 효력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남북합의서를 조약과 분리해 관리하고 있는 우리 법률체계에서 각각의 남북경협사업을 국내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이 실효적인 차선책이라 하겠다. 현재 북한의 '개성공업지구법'과 남한의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이 함께 작동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합의서는 조약의 형식으로 체결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

남북간 정치적·물리적 충돌로 경협사업이 중단되는 상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위기관리장치와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상황에서 경협사업의 중단을 통보하고, 임시 관리하며, 협상을 통해 재개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와 동 법률 시행령에 있는 절차 규정을 남북관계의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또 지난 9월부터 가동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함께 남북간 상사분쟁을 해결할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하루 속히 구성해 정상 가동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고 남북경협의 제도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다국적 경제주체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경제지도를 그려 나가고 국제 자본과 다국적 기업이 동참한다면 남북경협의 정치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대북한 투자의 신뢰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북핵문제 해결은 그 무엇보다 선차적인 과제이다. 다만 남북경협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남북관계를 법제화하기 위한 세심한 준비가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