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고소득자 낙인' 연소득 7000만원 가구의 반란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2018.10.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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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조 복지예산, 내 몫은]①소득에 따라 받는 혜택 달라…'1원 차이'로 지원 여부 '문턱효과' 논쟁

편집자주 정부는 올해 145조원, 내년에 162조원을 복지예산으로 배정했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다. 하지만 집행과정에선 “나도 먹고 살기 빠듯한데 왜 혜택을 못 받냐”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누릴 수 있는 복지제도를 소득수준에 따라 정리해본다.

[MT리포트]'고소득자 낙인' 연소득 7000만원 가구의 반란


국내에선 연간 어느 정도를 벌어야 고소득자로 분류될까. 소득 상위 30% 안에 들면 고소득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중간 소득을 상위 30% 이하에서 70% 초과로 보면 전체 가구의 40%고 나머지 하위 30%를 저소득자로 보면 소득 상중하가 적절히 나뉜다.

하지만 지난 8월말 금융위원회가 소득 상위 30%면 무주택가구라도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대출 보증을 막겠다고 밝히자 거센 반발이 일었다. ‘소득 상위 30%가 무슨 고소득자라고 전세대출도 못 받게 하느냐’는 불만이었다. 금융위의 소득 상위 30% 이내 고소득자 기준은 연소득 7000만원이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의 이번 발표로 저희가 고소득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제발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인 정책을 펴 달라”는 청원도 쏟아졌다. 결국 연소득 7000만원의 반란으로 무주택자에 대해서는 전세대출 보증에 소득기준을 두지 않기로 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연소득 7000만원이 소득 상위 30%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2분기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588만2435만원을 넘으면 소득 상위 30%에 속한다. 이를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7059만원가량이다.



소득 상위 30%가 맞는데도 연소득 7000만원이 ‘우리는 고소득자가 아니’라고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없으면 연소득 7000만원으로도 한국, 특히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살아가기가 팍팍해서다,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각종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빼고 나면 연소득 7000만원 가구의 실제 소득은 60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2인 가구 기준으로 월급쟁이가 연간 내야 하는 건강보험료는 234만5000원(3.35%)이고 국민연금도 315만원(4.50%)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고용보험료 45만5000원(150인 이상 1000명 미만 사업장 기준)이 추가로 나간다.

덧붙여 소득세(본인·배우자 소득공제 적용, 이외 공제는 못 받는다고 가정) 600만원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5805만원이다. 월급으로 치면 483만7500원이다. 2인 가구의 실소득이 월 490만원이라면 부유해 보이지만 반발이 심했던 것은 집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이 조사한 지난 8월 서울의 평균 주택 매매가격은 6억3228만원. 연소득 7000만원 가구가 각종 세금과 보험료를 제하고 손에 쥔 연소득 5805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저축한다고 해도 10년10개월이 걸려야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서울의 아파트는 평균 매매가격이 7억4978만원으로 12년11개월 걸린다.

‘전세살이’도 만만치 않다. 지난 8월 서울의 평균 전세가격은 3억6627만원, 아파트 전세가격은 이보다 1억원 가까이 비싼 4억5583억원으로 나타났다. 연소득 7000만원이라도 부모 도움 없이는 서울에 살 곳을 마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무주택자라도 연소득 7000만원을 넘으면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하니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저소득과 고소득을 나누는 기준도 모호하지만 단돈 1원 차이로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못 받는 사람이 갈리는 ‘문턱효과’도 논쟁거리다. 예컨대 서민들이 낮은 금리에 이용할 수 있는 보금자리론은 자녀가 없을 때 연소득 7000만원 이하가 대상이다. 연소득 7000만원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7100만원은 못 받는다. 단돈 100만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게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턱효과’는 정부의 각종 복지서비스에서도 나타난다. 정부는 복지서비스를 받을 때 대부분 소득기준을 둔다. 1원 차이로 수급권자와 비수급권자가 갈릴 수 있다. 선정기준에 부합해 수급자가 되면서 비수급자보다 소득이 늘어나는 역전 현상도 벌어진다. 정부는 이 같은 ‘문턱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둘러싼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 정책으로 기초연금 수급자가 대거 탈락하는 사태도 ‘문턱효과’의 한 예다. 정부는 내년 공시가격에 올해 집값 상승분을 반영하기로 했는데 공시지가가 30% 오르면 9만5161명의 기초연금 수급자가 탈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초연금수급자는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 중 소득인정액이 하위 70% 이하인 사람들로 단독가구 기준 소득인정액이 131만원, 부부가구의 경우 200만9600원 이하다. 소득인정액은 월소득과 보유자산을 감안해 계산하는데 공시지가가 오르면 보유자산 가치가 상승해 기초연금 수급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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