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상도유치원 곳곳에… "기막힌 안전불감증"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이해진 기자, 방윤영 기자, 서민선 인턴기자 2018.09.2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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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덤프트럭과 함께 등교…전문가 "안전비용 줄여 기업이윤 챙기는 관행 문제"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로 학교 옆 공사장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현장 곳곳에서는 제2, 제3의 사고 가능성으로 시민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 바로 옆에 땅을 파 병원을 짓겠다는 계획에 구청이 허가를 내주기도 했고 공사장 때문에 좁은 길로 학생들이 이동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관행이 된 안이한 안전 대책이 '제2의 상도유치원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요양병원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서울 강동구 한국 구화학교 뒷마당. 현재는 구화학교가 스쿨버스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요양병원은 이 부지에 학교 외벽과 1.8m, 설계도면 상 75㎝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지어질 예정이었다. /사진=이해진 기자요양병원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서울 강동구 한국 구화학교 뒷마당. 현재는 구화학교가 스쿨버스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요양병원은 이 부지에 학교 외벽과 1.8m, 설계도면 상 75㎝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지어질 예정이었다. /사진=이해진 기자


◇학교 1.8m 거리에 지하 10m 터 파고… 안전은 뒷전

서울 강동구 고덕동 특수학교 '구화학교'. 청각장애아동, 지적장애아동 등 147명이 재학 중인 이곳 바로 옆에 지하 3층·지상 6층, 연면적 1만3540㎡ 규모의 요양병원 신축공사가 예고돼있었다. 요양병원 위치는 학교 외벽과 1.8m, 설계도면 상 7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구화학교 관계자는 "학교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아파트 공사장에서 굴착공사를 할 때도 지진이 난듯 진동이 느껴졌다"며 "더 가까운 곳에서 지하 10m 이상의 땅을 파야 하는 공사가 시작되면 '제2의 상도유치원'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건축주에게 상세 설계도면과 지반조사 결과, 안전 조치 등을 요구했지만 간단한 조감도, 평면설계도만 돌아왔다.

관할 구청의 대응도 비판을 받는다. 강동구청은 요양병원 설립 설명회에서 안전 대책을 묻는 민원인의 질문에 직원이 "추후에 마련하겠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건축주 측은 관련 정밀 검토를 거쳐 인허가를 받은 만큼 균열 등 안전상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요양병원 관계자는 "서울국토관리청과 LH공사의 정밀 검토를 통해 지하 굴착으로 인한 주변 시설물의 균열 등 영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관할 구청은 돌연 병원 건축 허가를 취소했다. 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검토한 결과 건축 허가를 이달 20일 취소키로 했다"고 말했다.

◇"등굣길에 덤프트럭, 구청 민원 넣었지만 변화 없어"

김영화씨(45·서울 양천구)는 남명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등교시킬 때마다 진땀을 뺀다. 학교 앞 약 200m 거리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장 때문이다. 등교시간에도 대형 덤프트럭이 다니는 통에 2학년생인 딸은 "무섭다"며 엄마 손을 꼭 잡는다.

학부모들은 이르면 내년부터 시작될 학교 바로 옆 재개발 구역 공사가 더 큰 걱정이라고 말한다. 남명초 학부모 김순정씨(46)는 "아이들 하굣길에서 철거가 시작되면 먼지와 소음이 엄청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자체는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시공사 측에 등하교 시간대에 최대한 공사 차량 이동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강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 "곧 철거 예정인 (학교 바로 옆) 구역은 아직 이주 단계여서 별도 안전 대책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 은평초등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학교 옆 아파트 공사장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약 20~30m 거리에 있다. 아이들 등교 시간인 오전 8시에도 공사는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덤프트럭이 오가는 공사장 입구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좁은 길로 등교했다.

은평초 병설유치원 학부모 전기호씨(44)는 "등원길에는 대화하기 힘들 정도로 공사 소음과 차량 경적 소리가 심하다"고 말했다.

같은 유치원 학부모 조성례씨(40)도 "공사현장 관계자들은 아이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등하교 시간대만이라도 덤프트럭이 오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고 말했다.

구청에서는 권고 수준의 행정지도밖에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시공사 측에 민원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어서 강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달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명초등학교 인근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장. 임시로 가림막과 통행로를 만들었지만 비좁은데다 공사차량 등이 불법 주차 돼 있어 시민들은 아이들 통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사진=서민선 인턴 기자이달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명초등학교 인근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장. 임시로 가림막과 통행로를 만들었지만 비좁은데다 공사차량 등이 불법 주차 돼 있어 시민들은 아이들 통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사진=서민선 인턴 기자
◇만연한 공사장 안전불감증… "상식 수준 안전 담보돼야"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건축주, 시공사의 안전불감증으로 상도유치원과 비슷한 환경에 놓인 공사장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구화학교 옆 요양병원 공사를 맡았던 건축사 A씨는 '이격거리가 좁다'는 취재진 지적에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 공사하다 보면 흔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도유치원 사고 이전부터 관련 안전 문제를 지적했던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유사한 일들이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건축주들이 '안전하다'며 제시하는 국토관리청 평가도 실상은 부실하게 진행돼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안전비용을 줄여 기업이윤으로 돌리는 잘못된 관행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며 "상식선에서 안전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학교 옆 공사장의 경우 어린이 보행권을 충분히 확보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해야 한다"며 "비산먼지와 소음을 최대한 줄이도록 작업장 관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공사차량도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암반이 많아서 발파 작업 등으로 진동이 있을 경우 발파에 쓸 폭약을 기준치보다 적게 넣거나 공사장 차단벽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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