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호주는 되고 한국은 왜 안되나"..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재구성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세종=정현수 기자, 한고은 기자 2018.09.14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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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10월30일 한·미 통화스와프까지..글로벌 금융위기 긴박했던 45일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한국은행은 이날 한국과 일본이 오는 23일 만료되는 100억달러(약 11조3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에 대해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1년 처음 체결된 양국 통화스와프 계약은 14년만에 중단된다.통화스와프는 외환 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2015.2.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한국은행은 이날 한국과 일본이 오는 23일 만료되는 100억달러(약 11조3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에 대해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1년 처음 체결된 양국 통화스와프 계약은 14년만에 중단된다.통화스와프는 외환 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2015.2.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줄어) 가라 앉는 느낌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한국과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2008년 10월30일은 세계 4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으로 큰 타격은 받은 우리나라가 달러 기근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며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떨쳐버리는 순간이었다.

미국이 비기축통화국과 협정을 맺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용데스크 팀장,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 등이 “호주, 덴마크는 되고 한국은 왜 (통화스와프 체결 대상에) 포함이 안 되느냐”는 논리로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부총재, 도널드 콘 미 연준 부의장, 로버트 도너 미국 재무부 아시아 담당 차관보, 네이든 쉬츠 연준 국제국장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 수십번의 설득을 통해 이뤄낸 결과다. ‘2008년 금융위기 백서’ 등을 통해 숨가빴던 당시 45일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10년 전인 2008년 9월15일 오후 5시. 급보가 날아든다. 리먼브러더스가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이었다. 실무주역인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용데스크 팀장은 리먼 브러더스에 한국은행의 레포(repo·환매조건부채권) 잔액을 모두 정리해줄 것을 제안했다. 다행히 그날 오후 3시35분까지 완전 청산됐다.

9월 19일. 기재부에서는 강만수 장관이 신제윤 차관보에게 통화스와프 추진을 지시했다. 신 차관보는 클레이 라우리 미국 재무부 차관보와 협의에 나섰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한국의 낮은 신용등급이 이유였다.



9월 22일. 한국계 금융기관의 유동성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루머가 시장에 급속히 확산됐다. 국가의 디폴트 위험을 나타내는 한국 크레디트디폴트 스왑레이트(CDS)가 급상승하면서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적인 세력 뿐아니라 장기적인 투자자로 알려진 연기금들조차 한국물을 공매도(Short Sale)하기 시작했다.

9월 30일 오전 10시30분. 일본의 회계연도말의 결산에 따른 단기금융시장의 경색으로 한국계 은행 단기자금조달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식이 전파됐다. 한국계 은행 자금담당자들은 ‘패닉’ 상태였다.

10월 1일 오전 10시20분. 어려움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통화스와프였다. 본격적으로 미 연준을 방문해 중앙은행 스와프 계약을 타진하기로 했다. 통화스와프 계약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결사항인데 미 재무성 관계자들만 만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연준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추진키로 했다. 뉴욕 연준 국제국과 시장국에 ‘중앙은행간 스와프계약’ 관련 면담을 공식 요청했다.


10월 2일 오전 10시. 이 총재 지시 하에 윤 팀장과 더들리 부총재와의 면담이 성사됐다. “신규로 계약을 체결한 호주, 덴마크는 되는데 왜 한국은 (통화스와프 체결이) 안되느냐. 이들과 비교할 때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비중이 결코 적지 않으므로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국가로 통화스왑 확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한국이 국제통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통화스와프에 신중하단 입장을 보였지만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낙인효과’ 때문에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10월 8일 오후 3시. 당시 이광주 한은 부총재보와 더들리 부총재간 면담이 이뤄졌다.

10월 9일 오전 11시. 이 부총재보와 미 재무성 파이낸셜 마켓 담당 토니 라이언 차관보가 만남을 가졌다.

10월 11일. 이 부총재보는 네이든 쉬츠 연준 국제국장을 만났다. 이 부총재보는 “통화스와프 규모가 얼마라기 보다 시장에 안정적 메시지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목요연하게 그들이 묻는 질문에 답해 나갔다. 이날 청와대에서도 미 연준과 접촉을 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14일 오전. 한국의 외화유동성이 심각하고 제 2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다는 외국언론의 보도로 이와 관련한 문의가 한은 뉴욕 운용팀 앞으로 쇄도했다.

10월 16일. 뉴욕 연준으로부터 “외환보유액 운용에 대해 논의‘를 하자면서 한은 측에 뉴욕 연준 시장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받아 면담이 이뤄졌다.

10월 23일 오후 12시14분. 뉴욕 연준으로부터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사실을 통보받았다. 뉴욕 연준 시장국으로부터 한국은행과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10월 23일 오후 3시20분. 뉴욕 연준으로부터 통화스와프 계약 내용을 확인했다. 미 연준은 FOMC에서 한국은행을 통화스와프 계약 대상국으로 추가할 계획이며 이번 통화스와프 확대대상국의 통화스와프 규모 등 주요 내용을 유선으로 통보했다. 뉴욕 연준은 이번 통화스와프 계약 확대의 주요 내용에 대해 ‘특별한 보안유지’를 당부했다.

10월 24~26일. 한은과 뉴욕 연준 관계자가 통화스와프 계약 준비를 위한 실무협의를 열었다. 체결 전 마지막 작업에 돌입했다.

10월 30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통화스와프 규모는 300억달러. 한 달 치 수입액 결제대금에 그치는 수준임에도 달러 우산의 위력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 달러당 15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던 원화 환율은 하루 만에 177원이 내렸다.

한미 통화스와프의 공적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티격태격했지만 결과적으로 합동 작전의 개가였다. 미 연준은 처음에 미온적이었다. 이머징 통화와의 교환은 전례가 없어서다. 연준을 설득한 논리는 달러 패권의 위기론. 환율 방어를 위해서는 미 국채를 팔아 달러 현찰을 쥐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달러의 위기가 증폭한다는 논리는 먹혀들었다. 외환 당국은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무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은과 기재부 인사들이 미국 연준과 재무부 등의 인맥을 적절히 활용한 전략도 주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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