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서울 올라가요"…혹시 나도 '서울주의자'?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8.09.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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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화국-①]"서울, 아니면 시골"…일상에 스며든 '서울 중심적 사고'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빨간날]"서울 올라가요"…혹시 나도 '서울주의자'?
"너희 집도 과수원 해? 나주 배 유명하잖아"

서울살이 12년 차인 직장인 A씨(30)가 귀에 못이 박이게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전남 나주 출신이라고 말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묻는 이들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양호한 편. 대학 신입생 때는 같이 쇼핑을 하던 서울 토박이 친구가 "나주 애가 신기하게 백화점 브랜드를 다 꿰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들어봤다.




무심코 행하는 언행이 '서울 공화국'(정치, 경제, 문화 등 대부분 역량이 서울에 집중되는 현상)을 만들고 있다. 서울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일상 속 미묘한 차별이 서울과 타 지역 간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이 아니면 다 시골인가요?



대표적인 인식이 '서울'과 '지방'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것이다. 특히 '서울 외 지역은 모두 시골'이라는 낡은 생각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울산이 고향인 직장인 박혜정씨(28)는 최근 직장 상사가 무심히 던진 말에 울컥했다.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의 '첫 콘서트'에 간다는 박씨의 말을 오해한 상사가 "콘서트를 처음 가봐? 맞다. 혜정씨 시골 사람이었지?"라고 웃으며 말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순간 '시골 사람'이란 단어에 발끈했다"며 "울산이 서울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광역시다. 도시 규모나 인구와 무관하게 서울 밖의 지역을 시골이라 생각하며 무시하는 것 같아 서러웠다"고 토로했다.


'서울 올라간다'는 표현에도 이 같은 사고가 녹아들어 있다. 물리적 위·아래, 즉 위도상 개념과 무관하게 타 지역에서 서울을 갈 땐 '올라간다'는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한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을 갈 때도 위치와 상관없이 '내려간다'고 표현한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군 복무 중인 권모씨(22)는 "서울보다 의정부가 북쪽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할 때 '이번 휴가 때 내려갈게요'라고 말하게 된다"며 "무의식적으로 서울을 가장 높은 도시라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왜 '서울'이 빠졌죠?"…기분 나쁘면 예민한 것?

'서울'이라는 지명을 명칭 등에서 생략하는 것도 서울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앞에는 대개 '서울' 대신 동(洞) 이름이 붙는다. '중곡동 살인사건', '신림동 고시원 살인사건' 등이 그 예다.

반면 서울 외의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에는 '시'(市) 이름이 수식어가 된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등이 그렇다. 지난달 23일 과천시는 같은 달 10일 발생한 '서울대공원 토막 살인사건'과 관련해 시의 이미지를 훼손한다며 '과천' 지역명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지하철역 이름에서 서울 중심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인 김모씨(25)는 "서울시청 근처 역은 '시청역', 인천시청 근처 역은 '인천시청역'이라 이름이 붙어있다"며 "사소하지만 '서울 공화국'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사진=지역 커뮤니티 화면 캡처/사진=지역 커뮤니티 화면 캡처
서울 중심적 사고는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할 수 있지만 일일이 지적하고 따지기는 쉽지 않다. 지적하는 순간 주변인들에게 오히려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지난 여름방학 기간 부산 본가에 있었다는 대학생 양주희씨(22)는 "7월 초 태풍 쁘라삐룬이 부산에 상륙했을 때 서울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SNS에 하늘 사진을 올리며 예쁘다고 자랑했던 적이 있다"며 "서울 하늘이 그림처럼 맑다는 기사도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부산은 강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서울의 맑은 하늘을 자랑하는 듯한 글과 기사를 보니 '서울만 한국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다"며 "그래서 친구들에게 삼가 달라고 말했더니 '유난이다'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서울 공화국' 벗어나려면?…"언어 사용부터 주의 기울여야"

전문가들은 언어 등에 뿌리내린 서울 중심적 의식구조를 먼저 털어내야 '서울 공화국'을 탈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방을 가볍게 여기는 의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전국 행정기관 명칭에서 '지방'이라는 단어를 삭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지방'이 '중앙(서울)'의 하위개념으로 사용되며 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적 의미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여야의원 39명과 함께 전국 행정기관 명칭에서 '지방'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검찰청법', '경찰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광주지방경찰청은 광주경찰청으로,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인천해양수산청으로 바뀐다.

원 의원은 "그동안 무의식으로 행정기관 명칭에 '지방'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해 왔다"며 "'지방'이라는 단어를 빼도 '광주', '부산' 등 지역명이 포함돼 있어 구별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명칭은 지방 행정기관을 자발적 역량을 지닌 주체가 아닌 중앙의 통제 아래 있는 객체로 전락시킨다"며 "행정기관 명칭 변경은 중앙과 지방이라는 권위적 위계 구조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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