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사태는 먼지 없는 부패"… 끝까지 반성 않는 大盜

머니투데이 김영선 기자 2018.09.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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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10년(上)]⑤ 글로벌 금융위기 '책임 라인' 대부분 법적 처벌 면해…구제금융 투입됐던 AIG의 전직 CEO 2000억원 퇴직금

편집자주 대공황이후 최악의 세계경제위기를 몰고 온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이달 15일로 10년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유례없는 초저금리로 미국은 위기에서 벗어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위기의 칼끝은 늘어난 유동성에 취해 부채가 급증한 신흥국들을 다시 향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15일(현지시간) 찍힌 리먼의 뉴욕 본사 사진./AFPBBNews=뉴스1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15일(현지시간) 찍힌 리먼의 뉴욕 본사 사진./AFPBBNews=뉴스1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먼지 없는 부패(immaculate corruption)'다."

미국 의회 산하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 위원장을 맡았던 필 안젤리데스는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같이 정의했다.

그러면서 "월가의 빠른 회복에 대한 수백만 명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이 지금의 트럼프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기 회복의 혜택이 대부분 기업과 고소득층으로 몰리면서 불만이 폭발한 중산층 이하 계층이 '경제 민족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를 밀어줬다는 분석이다.



안젤리데스 전 위원장은 "거액의 공적지원을 받고 회복한 금융기관들은 더 거대하고 강력해졌다"며 "위기 이후 일부 경영자는 고액의 퇴직금도 받았다"고 지적했다.

안젤리데스에 따르면 리먼 사태가 터진 지 10년째인 현재 미국 대형 은행들은 이전의 수익을 회복했고 경영자들의 보수는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마틴 설리번 전 CEO(최고경영자)는 1820억 달러(약 205조24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1억7000만 달러(약 1919억원)의 퇴직금을 챙겼고, 마찬가지로 공적 자금이 투입됐던 씨티그룹의 전 선임 고문 로버트 루빈은 1억10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한 주역들의 '도덕적 해이'는 최근까지도 논란이 됐다. 지난달 20일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수백 명의 전직 리먼 직원들이 은행 붕괴 10주년을 맞아 영국 런던에서 '비밀 파티'를 기획했다고 보도했다.

파티는 리먼이 파산한 9월 15일쯤 열릴 예정으로 주최 측은 오랜 기간 이 계획을 비밀로 했으나 세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장소 변경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티의 날짜 못지않게 그 형식도 공분을 샀다. 칵테일과 카나페가 차려지는 등 마치 축제의 장처럼 비쳤고 영국 노동당 존 맥도널 의원은 "역겹다"고 했다.


이들이 건재한 이유는 책임 라인에 있던 이른바 '월가 거물'들이 대부분 법적 처벌을 면했기 때문이다. 유죄 평결을 받은 건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과 파브리스 투르 전 골드만삭스 부사장 정도다.

"리먼 사태는 먼지 없는 부패"… 끝까지 반성 않는 大盜
리먼브러더스의 CEO였던 리처드 풀드는 투자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한동안 외부활동을 중단했던 풀드 전 CEO는 2010년 투자사 '레전드 시큐리티'를 통해 금융계에 복귀하기도 했다.

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내 탓이 아니다'란 식의 발언으로 공분을 사기도 했다. 2015년 5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한 강연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2008년) 금융위기는 '한 가지 요인(리먼 사태)'에 의한 게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항변했다. 리먼 파산이 금융위기의 시발점이라는 세간의 지적을 부인한 것이다.

풀드는 "2007년 9월 말까지만 해도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할 정도의 회사가 아니었다"며 정부의 낮은 금리 정책으로 책임을 돌렸다. 그는 "(당시) 정부는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금융위기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겹쳐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이 연출되는 '퍼펙트 스톰'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07년 파산위기에 처한 베어스턴스를 JP모건체이스에 떠넘겨 월가 위기를 촉발한 제임스 케인 전 베어스턴스 CEO는 안락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선구자로 꼽힌 안젤로 모질로 전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 CEO는 2010년 내부거래와 사기 혐의로 675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지만 이후 자선사업가로 변신, 존경받는 활동가가 됐다.

전 메릴린치 CEO인 존 테인은 2009년 1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합병 후 거액의 상여금과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난 뒤 투자그룹 CIT를 차려 회장 겸 CEO를 역임하고 있다.

안젤리데스 전 위원장은 "금융업계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법적 보상을 거의 내지 않고 있다"면서 "월가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금융)위기 이전에 일어났던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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