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부채의 역습(2)

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2018.09.12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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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흥할 수도 있지만 빚으로 망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 공통점은 빚이 많고,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갚아야 할 달러빚이 많은데 달러벌이가 안 된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갚아야 할 이자부담은 커진다. 산유국이 아닌 경우 석유 등 에너지 비용도 감당이 안 될 만큼 높아진다. 자금이탈이 가속화한다. 아르헨티나처럼 금리를 60%로 올리는 건 되레 스스로에 대한 낙인찍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은 경제주권을 내주는 것이고 그래서 최후의 수단처럼 여겼지만 이젠 그것조차 쉽지 않다. 미국에 찍힌 나라들은 미국이 최대출자국인 IMF로부터 달러를 공급받을 수 없다. 그대로 국가부도로 가는 것이다.

이런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은 금리를 계속 올릴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상반기에 두 번 금리를 올렸고 올해 남은 기간에 한두 번 더 금리를 인상할 것이다. 가장 약한 고리였던 신흥국들은 더 괴로울 것이고, 전이 가능성이 있는 국가도 늘어날 것이다.



아직은 가정의 영역이겠지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세계 최대 개발대상국”이라고 자평했듯 신흥국 범주에 있는 중국 기업들의 부채도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잠재적 악재이자 최대 위험요인이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초반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의 위기, 1990년대 중후반 아시아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늘 ‘빚’이 발화점이었다.

지금의 신흥국 위기도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예측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대다수 나라가 빚으로 생긴 문제를 빚을 더 내서 막았고 일부 국가가 먼저 한계를 맞은 것이다.


시선을 내부로 돌리면 빚에 중독된 성장은 위기가 현재화한 나라들만의 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의 1분기 가계부채는 GDP 대비 95.6%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70%보다 높다. 전세보증금을 가계부채에 넣으면 122%다.

인터넷은행을 통해 용도제한 없이 1억~1억5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DSR를 80%로 낮춘다고 하지만 선진국의 40%랑 비교하면 여전히 느슨하다. 이런 상황에서 돈의 흐름이 역류하면 위기를 맞는 건 한순간이다.

경상수지는 흑자를 내지만 금액이 축소되고 있다. 1~7월 경상수지 흑자는 384억달러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429억달러, 2016년 628억달러에 못 미친다. 반도체 경기가 꺾일 것이라는 외국계 IB(투자은행)의 보고서로 지난 7일 외국인이 5년 2개월여 만에 최대금액을 순매도한 데서 보듯 자금유출 우려는 늘 존재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미국이 금리를 올려도 따라가지 못해 미국과 금리가 역전됐고 이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순채권국이고 2분기 말 기준 단기외채 비중도 28.4%에 그치지만 어느 순간 돈이 빠져나가면 4000억달러 넘는 외환보유액이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광화문]부채의 역습(2)


외환보유액이 많은 10개국에 중국(1위) 러시아(6위) 인도(8위) 한국(9위) 브라질(10위) 등이 이름을 올렸지만 이는 곧 그만큼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보듯이 터질 일은 언젠가 터진다. 따라서 가계부채 구조조정으로 외부 충격이 오기 전에 방어벽을 쌓아가야 한다. 빚으로 쌓은 모래성은 외풍을 견딜 수 없다. 미루면 미룰수록 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릴 것이다. 정책당국의 결단이 필요하나 책임질 일은 하지 않을 듯하다. 해결난망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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