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저인망식 대주주 과세, 투자 생태계 왜곡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배규민 기자 2018.09.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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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울리는 누더기 과세]②위험한 이중 과세…"거래세 페지 양도세 도입, 과세 형평성에 부합"

편집자주 저성장·고령화 시대. 투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이자 수익만으로 '장수 리스크'를 대비할 수 없다. 주식과 채권, 금융상품에 장기분산 투자해야 하는데 현행 과세 체계는 투자를 장려하긴 커녕 발목을 잡는다. 세금 징수에 초점을 둔 탓에 손실 나도 세금 내는 일이 다반사다. 땜질식 과세로 편법을 부추기고 시장왜곡을 초래한다. 합리적이고 단순한 과세 체계를 마련해 노후 대비를 돕는 것이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도 부합한다. 현재 자본시장 과세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MT리포트]저인망식 대주주 과세, 투자 생태계 왜곡


[MT리포트]저인망식 대주주 과세, 투자 생태계 왜곡
서울 여의도에서 개인투자자로 활동 중인 J씨(48)의 실제 사례다.

#1. J씨는 지난해 초 코스닥 상장사 스마트폰 부품업체 A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주식 매입을 시작했다. 연말 J씨가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14억5000만원.

국내 상장 주식은 수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지만 평가액 15억원 이상이면 대주주로 보고 양도세(22%)를 매긴다.



J씨는 대주주에 걸리지 않을 만큼(15억원 이하)만 매입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이 자신 몰래 A사 주식 1억원 어치를 매수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대주주 자격 여부를 파악할 때 직계 존비속과 배우자의 주식 보유액까지 합산하므로 J씨는 아내 보유분을 합산, A사 주식 15억5000만원을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J씨는 대주주 여부를 최종 확정하는 연말 주주명부폐쇄일 직전에 A사 주식을 서둘러 팔았고 주가는 급락했다.

#2 J씨는 코스닥 반도체 기업 B사 주식 10만주를 매입했다. 주당 1만4800원으로 총 평가액은 14억8000만원이다. 연말 폐장일 B사 주가가 1만5000원을 돌파하면서 J씨의 보유금액은 15억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대주주 과세에 걸리게 된 J씨는 급하게 B사 주식을 장내 매물로 쏟아내 주가를 1만4000원대로 끌어 내리는데 성공했다. 매도 공세로 대주주 과세를 회피한 것이다.



이처럼 연말에 다가올수록 주식을 대량 보유한 개인투자자가 대주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물을 쏟아내는 일이 잦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 상장 주식의 양도세 과세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보유금액 기준을 현행 15억원에서 2020년 4월 10억원, 2021년 3월 3억원으로 크게 낮추기로 했다. 현재도 연말이면 시장 교란이 발생하는데 3억원 이상으로 기준을 대폭 낮추면 변동성이 극심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한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는 "20개 종목에 1억원씩 분산해 2억원을 벌면 비과세고 삼성전자 한 종목에 20억원을 투자해 2억원 수익을 내면 과세"라며 "이처럼 과세 명분이 부족하고 형평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피해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거래세는 유지하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면서 '이중과세'에 따른 시장 왜곡과 자본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크다. 거래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적용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도 일본, 미국 등 선진국처럼 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은 1989년 4월에 주식 양도세 전면과세로 과세체계를 바꾸고 10년에 걸쳐 거래세를 폐지했다. 미국도 주식, 펀드 등 자본 이득에 대해 모든 소득을 합쳐 과세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한국처럼 거래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지 못한 특수한 상황이 존재한다.

국내 파생상품 세제 개편시 한국을 방문해 토론에 참여한 한 대만 교수는 "대만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지 못해 양도세 적용시 투자자가 자산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불가피하게 거래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실명제를 도입한 한국에서 굳이 거래세를 고집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올 상반기 정부가 거둬들인 증권거래세는 약 4조원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거래세가 세수를 예측하기 쉽고 매년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다는 면에서 선호한다.

하지만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일평균 거래 대금이 7조원대에서 5조원대로 급감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 이런 논리도 빈약하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농어촌특별세를 포함한 증권거래세 세수는 2015년 7조2682억원에서 2016년 6조9195억원으로 줄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자본시장을 세수를 확보하려는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말고 선진국처럼 기업의 혁신 성장을 위한 인큐베이터라는 철학을 갖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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