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꼭 비워둬야 할까요"

머니투데이 김자아 기자, 이상봉 기자 2018.09.0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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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물어봐드립니다]⑩ 임산부 배려석, "항상 비워둬야" vs "비효율적…비켜주면 돼"

편집자주 당사자에게 직접 묻기 곤란했던 질문들… 독자들의 고민 해결을 위해 기자가 대신 물어봐드립니다.



#매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이모씨(28)는 몇 달 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승객에게 '민폐' 소리를 들었다. 앞에 자리가 났는데도 앉지 않고 비워둔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임산부 배려석이라 비워둔 것"이라고 말했으나, 해당 승객은 "사람도 많은데 자리를 비워두는 게 더 매너 없는 행동"이라며 눈을 흘겼다. 이씨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임산부 배려석에는 앉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지만,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비워두면 민폐라는 주장에도 수긍이 갔다. 이씨는 "자리가 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바에 앞으로 임산부 배려석 앞에는 서있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항철도 임산부 배려석에 인형이 놓인 모습(왼쪽)과 지하철 5호선 핑크색 시트와 바닥/사진=뉴스1, 남형도 기자공항철도 임산부 배려석에 인형이 놓인 모습(왼쪽)과 지하철 5호선 핑크색 시트와 바닥/사진=뉴스1, 남형도 기자


임산부 배려석이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 지하철 모든 칸에 임산부 배려석을 설치했다. 좌석 등받이 바로 위에 임산부 로고를 붙여 '임산부 배려석'임을 알렸다. 그후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임산부 배려석은 점점 더 눈에 띄게 변했다. 바닥엔 분홍색 스티커가 붙었고, 좌석 시트가 '핫핑크'로 바뀐 노선도 있다. 최근 공항철도에는 임산부 배려석임을 알리는 작은 곰인형까지 등장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임신하지 않은 승객들이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를 위해 자리 비워두기를 권장한다. 14주 전후로는 태반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아 약한 자극에도 유산 위험성이 높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아 좌석을 양보받기가 더욱 어렵다. 또 임산부 배지를 착용하거나 만삭인 경우에도 미처 임산부를 발견하지 못해 자리를 비켜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임산부 승객이 언제든지 자리에 앉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게 '임산부 배려석'의 취지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승객들. /사진=뉴스1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승객들. /사진=뉴스1
일부 승객들은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건 어디까지나 배려일뿐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누리꾼 yeni****는 "양보는 선택이고 진정한 양보여야 배려받는 입장도 마음이 편하다.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 사람도 앉을 수 있는 자리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누리꾼 cyj7****은 "양보할 수는 있지만 비워 놓는 건 비효율적이다. 노약자석도 비워 놓고, 임산부석도 비워놓으면 하루종일 일 하고 하루 왕복 4시간씩 출퇴근하는 사람 입장에선 역차별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임산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세 명의 임산부들은 모두 "임산부 배려석이 항상 비워져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세 사람 모두 "임신 중에는 몸이 무거워지고 균형감각이 둔해진다"면서 "대중교통에서 넘어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중교통에서 서서 가는 것에 대한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서울 시내버스 내부에 부착된 임산부 배려석 안내 스티커 /사진=이상봉 기자서울 시내버스 내부에 부착된 임산부 배려석 안내 스티커 /사진=이상봉 기자
임산부 배려석은 꼭 비워둬야 할까. n개월차 임산부 세 명에게 대신 물어봤다.

임신 6개월 K씨: "임신 초기엔 티가 안 나서…"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에 누군가 항상 앉아있어서 이용 잘 안 한다. 10번 중 9번은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더라. 임신을 하면 홀몸일 때보다 정말 많이 힘들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하는 불안감이 커서 온몸에 힘을 주게 된다. 몸이 불편해서 배려석에 앉거나, 임산부를 보고 일어나면 괜찮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본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임산부가 탄지도 모른다. 초기 임산부들은 티가 안 나는 경우가 많아서, 배려석이 항상 비워져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임신 8개월 P씨: "넘어질까 불안한데… 먼저 말하기 힘들어요"
임산부 배려석은 자리가 비워져있을 때만 이용한다. 배가 나오기 전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사람한테 양보받은 적이 없고, 만삭일 땐 한두번 받아봤다. 균형 잡기가 힘들어서 넘어질까 불안하다. 임산부 배려석 비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티가 안나는 경우에는 배려받기도 힘들고, 임산부니까 배려해달라고 먼저 말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미리 비워두면 좋을 것 같다.

임신9개월 J씨: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있지도 않아요"
임산부 배려석에 항상 사람들이 앉아있어서 이용 못한다. 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녀도 앉아있던 사람한테 양보받은 적이 없다. 이젠 일부러 배려석 앞에는 서있지도 않는다. 무언의 압박 같아서 차라리 다른 자리 앞에 서있는 편이다. 임신을 하면 홀몸일 때보다 훨씬 힘들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 때문에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배가 나오면 무게 중심이 안 맞아서 힘들다. 대중교통이 흔들리면 휘청거리기도 한다. 겉으로 티가 나는 후기보다는 임신 초기에 훨씬 몸이 힘들고 위험하다. 그런데 초기 임산부들은 배가 안 나와서 배려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초기 임산부들을 위해서라도 자리가 항상 비워져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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