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한번 줘봐요"…차은택은 어떻게 '도깨비'가 됐나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8.08.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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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비선실록(秘線實錄) 제15화-'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차은택이 모자 벗고 옷 차려입으면 '청와대' 가는구나 했다"

편집자주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은 뭘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다일까? 수많은 진실들이 검찰과 특검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 속에 아직 숨어있다. 그 무수한 비밀을 품은 수사기록을 머니투데이 법률미디어 '더엘'(the L)이 단독 입수했다. "그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해답을 방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하나 하나 건져올려 차례로 연재한다. '비선실세'에 대한 '수사기록'을 재구성한 '비선실록'(秘線實錄)이다.

"이력서 한번 줘봐요"…차은택은 어떻게 '도깨비'가 됐나


"송성각은 2014년 이후 제가 갑자기 문화융성위원회 위원도 되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추천하고 자신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으로 임명되게 하는 등 일련의 일이 발생하자 제가 갑자기 능력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저를 '도깨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차은택, 2016년 11월 9일 서울중앙지검 1008호 검사실)

유명 CF감독이었던 차은택씨는 2014년 4∼5월쯤 한 중년 여성을 만났다. 당시 고원기획을 함께 설립한 고영태씨가 소개해줬다. 이 여성을 만나면서 차씨는 영욕의 길에 들어선다. 그가 바로 최순실이다. 최씨는 정부의 문화융성정책과 관련한 각종 사업의 이권을 노리며 문화 관련 재단 설립 등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던 참이었다. 차씨는 최씨와 처음 만났을 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어느날 중년 여성이 저와 고영태가 말하는 사이에 끼어들더니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한국 문화 중에 나쁜 것만 해외에 알려지는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서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소개도 하고 서로 말을 통하게 되자 최순실이 저에게 '감독님 이력서를 한번 줘보세요'라고 했다."(차은택, 2016년 11월 11일 서울중앙지검 1008호 검사실)

차씨의 이력서를 건네 받은 최씨는 한달여 뒤 차씨를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추천했다. 차씨는 그해 8월 문화융성위원으로 위촉됐고 이후 정부부처 인사와 각종 사업 등 문화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의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씨는 그렇게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차은택씨/ 사진=임성균 기자차은택씨/ 사진=임성균 기자
◇김기춘, 차은택에 "어른께서 힘을 합쳐 열심히 해달라고"

최씨를 만난 후 두달 정도 지났을 무렵 차씨는 청와대까지 움직이는 최씨의 힘을 직접 두눈으로 확인했다. 차씨가 2016년 11월 14일 서울중앙지검 1008호 검사실에서 한 진술을 보자.

"최순실의 추천으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심사를 받던 중 최순실이 저에게 '(박근혜) 대통령께서 개인적으로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문화융성정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마치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문화융성에 대한 국정기조에 대해 들은 것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최순실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최순실의 말을 시덥잖게 생각하고 최순실이 만나자고 해도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최순실이 고영태를 저에게 보내 만나자고 한 후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인 김기춘의 삼청동 공관으로 가보라고 했고 그곳에서 김종 (문화체육부 제2) 차관과 청문회로 낙마하기 직전의 정성근 전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김기춘을 만났다. 김기춘이 '어른(대통령)께서 3명이 힘을 합쳐 열심히 일을 해달라고 했다. 정 장관은 차은택과 힘을 합쳐 일을 잘 하세요'라고 말했던 사실이 있다. 한마디로 최순실이 저에게 대통령비서실도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파워를 보여줬던 것이다."


이때부터 문화 관련 인사 및 정책에 차씨의 입김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성근 전 후보가 낙마한 직후인 2014년 7월쯤 차씨는 최씨에게 자신의 지인들을 문체부 장관 후보로 추천했고 그 중 김종덕 홍익대 교수가 장관에 임명됐다.

또 차씨는 2014년 10∼11월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자신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를 추천해 다음해 4월 임명돼도록 했다. 2014년 12월에는 송성각 머큐리포스트 대외 담당 임원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공모에 지원하도록 한 후 최씨에게 이를 알려 최종 임명될 수 있도록 했다. 차씨가 최씨에게 자신의 지인들을 인사 추천하면 최씨가 이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박 전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수순이었다.

다음해인 2015년 4월 차씨는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민간 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동시에 맡는데 이 역시 최씨의 작품이었다. 차씨는 이미 6개월 전인 2014년 10월쯤 최씨에게 문화기반 창조경제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달했으며 이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2014년 10월쯤, (카페) 테스타로사에서 최순실이 '대통령이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잘 진행되지 않네요'라고 했다. 그래서 최순실에게 창조경제라는 것이 문화 기반으로 시작된 산업으로 영국, 중국, 일본에서도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문화기반산업을 육성하고 있다'고 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해외 사례들을 최순실에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자료도 줬다. 얼마 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며칠 후 청와대 연풍문에서 안종범 수석을 만났다. 그날 안종범 수석이 제가 최순실에게 준 자료를 그대로 들고 나오더니 'VIP께서 칭찬을 많이 하시던데요'라고 하면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에 대해 설명을 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최순실에게 한 설명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안종범 수석이 동감한다면서 CJ그룹과 문화 관련 혁신센터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그 회의에 나오라고 했다. 그후 CJ그룹과 여러번 회의를 거치면서 미래창조과학부와 문체부까지 참여를 하게 됐는데 CJ그룹과 정부 간 입장 차이가 나게 돼서 정부가 별도로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설립했고 저는 본부장직을 역임하게 됐다."(차은택, 2016년 11월 11일, 서울중앙지검 1008호 검사실)

"이력서 한번 줘봐요"…차은택은 어떻게 '도깨비'가 됐나
◇"차은택이 모자 벗고 옷 차려입으면 '청와대' 가는구나 했다"

최씨는 차씨와의 관계를 비밀에 부치려고 했다. 최씨는 차씨를 만난지 한두달 뒤 대포폰을 만들라고 했다. 이에 차씨는 직원 명의로 폴더폰을 만들어 최씨와 청와대 일부 인사와만 통화를 했다. 또 미르재단 설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2015년 초에는 송성각 원장에게도 대포폰을 만들어 수시로 통화했다. 차씨는 그 이유에 대해 "최씨가 저에게 지시하는 은밀한 내용을 전달할 경우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2015년 미르재단 설립 과정에서도 차씨는 재단 구상 단계에서부터 이사진 구성까지 폭넓게 관여했다. 다음은 차씨가 2016년 11월 9일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 검사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검사(이하 검) : 미르재단에 관해 언제 처음 이야기를 들었나.
차은택(이하 차) : 2015년 여름 정도에 두세번 문화 관련 재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검 : 어떤 내용이었나.
차 : 문화 관련으로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문체부에서 일하는 게 너무 느리고 앞으로 민간 재단을 만들어서 한국 문화를 세계화하고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검 : 2015년 여름 이후로는 언제 재단 이야기를 들었나.
차 : 2015년 가을 경 실제로 재단이 생긴다고 얘기를 했다. 당시 제가 문화창조융합본부에 있었는데 문화 관련해서 재단 쪽 일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씨가) 문화계 사람들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미르재단이 설립되기 두달 전 쯤에 들었던 것 같다
검 : 사람을 소개시켜 줬나.
차 : 저와 친한 문화계 사람을 모았다. 김성현, 김홍탁, 이성한, 이한선, 전병석 5명에게 연락을 해서 며칠 뒤 함께 신라호텔에서 최순실을 만났다.
검 : 5명이 만난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차 : 최순실이 '대한민국 문화도 이제 마케팅을 해야 한다' '대통령께서도 문화융성이라는 것을 국정기조로 처음 내세우신 분이시기도 한데 민간 분야에서 문화융성을 적극적으로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최씨 역시 신라호텔에서 이들과 만난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차씨에게 이사장을 추천해달라고 했다는 등 자신이 재단 운영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부인했다. 다음은 2016년 11월 9일과 12일 서울중앙지검 604호 검사실에서 최씨가 한 진술이다.

검사(이하 검) : 2015년 9월 경 신라호텔에서 차은택과 차은택이 데리고 온 사람들과 문화 재단 얘기한 사실이 있나
최순실(이하 최) : 신라호텔 생각은 안 나고 차은택이 데리고 온 김성현 이성한 이한선 등이 모였는데 그때는 문화 관련 사업이야기들을 많이 했고 문화재단이 생기면 서로 좋은 방향으로 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검 : 차은택이 피의자가 재단 이사장을 추천해달라고 해 김형수를 추천했는데 별 반응이 없다가 시간이 꽤 흐른 후 피의자가 이어령 전 장관과 김형수 등 3명의 명단을 가지고 와서 자신이 김형수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피의자가 '그래요'하고 별말이 없다가 나중에 김형수한테 알아보라고 했다는데.
최 : 저는 이어령 교수를 알지도 못하고 그런 사실이 없다.

차씨가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일각의 의혹은 사실일까? 다음은 차씨가 운영한 광고업체 플레이그라운드의 임원이자 미르재단의 사무부총장이었던 김성현씨가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다.

"차은택이 'BH'(청와대)를 들락거린다는 것은 알았다. 사실 차은택은 머리숱이 없어서 어떤 경우에서도 모자를 절대 벗지 않는다. 그런데 차은택이 유별나게 모자도 벗고 옷도 잘 차려입고 어딘가를 간 적이 있었다. 문화융성위원 위촉장을 받으러 갈 때였는데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고 그 이후에도 차은택이 행선지를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모자를 벗고 옷을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어디를 가는 것을 보면 청와대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씨는 자신이 이른바 '보안손님' 자격으로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공식적으로 밀라노 엑스포 준비 과정을 보고하기 위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님 등과 함께 대통령을 방문하거나 창조경제추진단 보고를 위해 미래부 최양희 장관님 등과 함께 대통령을 방문한 경우 외에는 사적으로 청와대에 출입해 대통령을 만난 사실은 없다"고 했다.

차씨는 포스코계열 광고업체 포레카의 지분을 넘겨받으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와 KT에 지인을 채용하게 하고 최씨와 설립한 광고회사를 통해 광고를 수주받게 한 혐의, 회사 자금 2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1심과 2심 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차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 현재 최종심을 남겨놓고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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