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숨겨온 단팥죽 할머니 "삶 마칠 때까지 계속해야죠"

머니투데이 박상빈 기자 2018.08.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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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부자]<2>-① 김은숙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대표, 틈틈이 기부…"현장 봉사자 부럽다"

김은숙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대표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박상빈 기자김은숙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대표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박상빈 기자


기부 숨겨온 단팥죽 할머니 "삶 마칠 때까지 계속해야죠"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과하게 대접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 식구도 잘 몰랐던 기부 생활이 들통나서 민망할 뿐이죠.”

서울 삼청동 거리에서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유명 단팥죽 가게를 운영하는 김은숙 대표(79)는 국내를 대표하는 ‘기부천사’로 선정돼 최근 청와대를 다녀온 일에 대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달 3일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에서 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창립 20주년 행사에 기부자 10명 중 한 명으로 초청받았다.

김 대표는 단팥죽, 십전대보탕, 식혜, 수정과 등을 팔아 번 돈을 2009년부터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꾸준히 기부해왔다. 90여차례에 걸쳐 기부한 돈만 2억4000만원 이상이다. 김 대표는 기부의 의미를 묻자 “특별한 일이 아닌 생활”이라고 말했다. 최근 1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팔아 전액 추가 기부한 그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기부하는 삶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가난한 삶이었지만 기부 강조했던 남편..소액 기부 어느덧 고액으로 커져= 김 대표를 기부하는 삶으로 이끌어준 사람은 바로 2010년 사별한 남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했던 1970년대 당시 한 일간지 기자로 일했던 남편은 쪼들리는 생활에서도 기부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다.

김 대표는 “남편 월급이 박봉이어서 월급이 들어오는 날 연탄과 쌀 등을 사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며 “그런데도 남편은 남은 소액이라도 기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 대표의 남편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열심히 사는 학생이나 주위 이웃을 도우며 기뻐했다. 또 기부한 돈이 잘 쓰이고 있는지 관련 소식지를 열심히 챙겨봤다.



김 대표가 자신의 명의로 기부하기 시작한 때는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을 열면서다. 힘든 살림살이 때문에 가게를 열게 됐지만 남편처럼 돈 번의 일부는 기부하려고 했다. 김 대표는 당시 주변 사람들이 음성 꽃동네에 기부하는 것을 보고 꽃동네에 기부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한달에 1만원 정도 기부했지만 가게가 크고 수입이 늘자 한달에 15만원 정도로 기부금을 꾸준히 늘려갔다.

이후엔 유니세프, 노숙인 단체, 사랑의 열매 등으로 기부처를 확대했다. 현재 김 대표가 한 달에 고정적으로 기부하는 금액은 사랑의 열매에 기부하는 300만원을 포함해 400만~500만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무더위가 심한 여름에는 단팥죽이 덜 팔려 장사로 번 돈보다 기부금이 많기도 한다”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고정적으로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숙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대표(왼쪽)가 지난달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주년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청와대김은숙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대표(왼쪽)가 지난달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주년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청와대
◇딸 아픈지도 모르고 살기 바빴던 그 시절..“기부하는 삶으로 아픔 승화”= 딸에 대한 미안함도 김 대표가 기부하는 삶을 이어온 이유 중 하나다. 김 대표는 “가난했던 시절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가게에 온통 신경을 쓰게 돼 딸과 아들에게 소홀했다”며 “딸이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아프게 된 것을 알고 자책감이 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딸의 치료를 위해 함께 찾았던 병원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갈등을 치유하며 살아나가기 위해 애썼다. 감동을 느낀 그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더 기부를 늘려가기로 다짐했다. 김 대표는 “아팠던 경험이 있으니 주위의 아픈 사람을 위해 먼저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아픔을 극복했던 경험이 기부로 승화된 것 같다”고 밝혔다.

50대를 훌쩍 넘긴 두 자녀는 이제는 김 대표의 삶을 든든히 받쳐주는 버팀목이다. 고령의 어머니를 대신해 가게를 봐주기도 하고, 아머니의 삶을 공감해주며 힘을 보태왔다. 김 대표는 “최근에 기부를 위해 아파트를 매각할 때도 ‘마음대로 하셔도 된다’고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0년 사별한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를 일찍부터 기부하기로 마음먹고 적절한 시기를 보다가 지난달 매각했고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얼마만큼 하겠다’ 대신 ‘해오던대로’ 기부하겠다..현장 봉사자들이 더 훌륭해”= 김 대표는 열심히 기부하며 살아왔지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기부할 것을 권유한 적은 없다. 최선을 다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히 이렇게 저렇게 사는 게 좋다고 제안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신 김 대표는 자신은 삶을 마칠 때까지 할 수 있는 만큼 기부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이라도 삶을 마감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며 “얼마만큼 더 기부하겠다 등의 희망사항을 낼 것도 없이 그동안 해온 것처럼 할 수 있는 만큼 기부를 이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부를 많이 하면서 주목 받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일선 현장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는 “일선 현장에서 노인들을 직접 수발하고, 불우한 어린 아이들을 직접 상담하고 지원해주는 현장 봉사자를 보면 가끔은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한다”며 “번 것을 기부하는 것보다 직접 봉사하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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