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스토리]"'영업 젬병' 화웨이 국내 최대 파트너 되기까지"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18.08.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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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존 정찬원 대표, '신뢰' 하나로 국내 최대 화웨이 파트너 사 돼... "더 키워 임직원과 공유할 것"

정찬원 씨스존 대표/사진제공=씨스존정찬원 씨스존 대표/사진제공=씨스존


2003년 무렵, 통신 장비를 취급하는 한 중소기업. 정 팀장은 이곳에서 기획팀장으로 있다. 그는 사업 기획안을 하나 낸다. 화웨이의 10G 광전송 네트워크 장비를 국내에 들여와 KT 등의 기간통신사로 공급하자는 안이다.

이 사업이 추진되려는 찰나 영업 인력들이 갑자기 퇴사를 해버렸다. 해당 사업을 기획한 정 팀장이 영업까지 직접 뛰어야 할 판국이다. 영업 목표는 기간통신사에 장비(화웨이) 협력사로 들어가는 것.



회사 측은 정 팀장에게 우선 모 통신사 A 부장을 만나라고 했다. 정 팀장은 영업이란 걸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A 부장을 만난다 해도 무슨 얘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장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만나 보라니 그리하기로 했다. 쉽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하고 찾아갔으나 만나 주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가면 만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알음알음해 주소를 알아냈다. 경기도 일산이었다. 퇴근 후 귀가할 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기다렸다. 3~4시간 기다렸을까. 밤 11시쯤 술을 한잔 걸친 모양새인 A 부장이 어슴푸레 보였다.



A 부장은 대뜸 호통쳤다. "집은 어떻게 알았느냐." "여긴 왜 찾아왔느냐, 당장 돌아가라."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뒷날 다시 찾아갔다. 꽤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A 부장은 보이지 않았다.

3번째, 다시 일산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마냥 서 있었다. A 부장의 아내가 잠시 나왔다가 흘깃 보고 들어갔다. 이윽고 현관문이 다시 열리더니 A 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오게." 그들은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날 이후 A 부장은 정 팀장에게 '알짜 정보'를 건넸다. 기간통신사를 영업하려면 누구를 만나야 하고, 만나려면 어떻게 접촉해야 하고, 해당 담당자들에겐 각각 어떤 설명을 해야 하는지 등 영업에 필요한 모든 걸 가르쳐 줬다.


'영업'에 '영'자도 몰랐던 정 팀장은 이렇게 세일즈에 입문했다. 그는 "그때 세일즈라는 걸 난생처음 해 봤다"면서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정 팀장은 지금의 씨스존을 이끌고 있는 정찬원 대표다. 정찬원 대표는 2011년 씨스존을 창업했다. '폭풍' 성장을 거듭한 씨스존은 설립 5년 만인 2016년, 매출액 486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매출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올해 다시 400억원대 매출을 바라본다. 국내 IT 업계에선 보기 드문 성장세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정 대표가 스스로 짠 영업 전략은 아니었지만, 훗날 되짚어 보면 이것이 유효한 전략으로 통했던 셈이다.

"당시 거래처 모두가 이런 마음이었죠. '측은지심' 말입니다. 영업 젬병인 제가 막무가내 부딪치고 다닐 때 불쌍해 보였던 거죠. 능수능란하지 않았던, 순수한 모습이 오히려 득이 된 거 같아요."

정 대표는 거래처 앞에서 솔직했다. '우리 회사의 문제점은 무엇이다' '우리는 이런 데 한계가 있다' '이런 도움을 받고 싶다' 등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했다. 이런 진솔함이 계속되자 고객사 담당자는 정 대표를 동생처럼 대했다. 관계가 형성되니 신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정 대표는 세일즈하는 후배들에게 종종 말한다.

"영업할 때, 처음 만나는 고객에게 무엇이든지 다 아는 척 하지 마라."

◇결심

그의 첫 직장은 대우통신이다. 주요 업무는 기획이었다. 1996년 입사,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2002년 퇴사한다. 그 뒤로 창업하기 전까지 동종 업계 2곳의 중소기업을 거쳤다. 창업 결심은 창업 직전 회사의 경험에서 기인했다.

마지막 다닌 회사에선 영업본부장을 맡았다. 또 다시 화웨이 장비를 도입해 기간통신사로 공급하는 일을 추진했다. 당시 그 회사에서 없던 비즈니스였다. 신사업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이 사업 덕분에 회사는 급성장한다. 매출이 급증하자 회사 측은 욕심을 냈다. '해당 장비를 직접 개발하면 어떨까'

이 욕구는 실행에 옮겨졌다. 화웨이가 알면 안 될 일이었다. 화웨이 장비를 수입해 국내 시장에 공급하던 회사가 갑자기 똑같은 장비를 개발한 뒤 기존 고객사에 공급한다면, 화웨이는 경쟁사도 아닌 믿었던 파트너 사에 발등을 찍힌 꼴이 된다.

이 때문에 정 대표는 당시 사장에게 일정 부분의 개발 제한을 주장했다. 화웨이 장비와는 좀 다른 제품을 만들자는 얘기였다. 또 "사업자를 분리해 화웨이 일을 전담하는 회사를 따로 만들자"고 했다. 화웨이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 어떤 제품을 수입하면서 똑같은 제품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모든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화웨이는 제품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화웨이의 신뢰를 등에 업고 일을 추진한 건 정 대표였다. 화날 만도 했다. 그 외에도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었다. 심지어는 오너가 회사를 매각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내 회사'라 생각하고 일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였다.

"제대로 된 회사를 직접 만들어야겠다."

◇임직원이 '내 회사'라 생각할 수 있는 기업을 위해...

정 대표는 2011년 5월 씨스존을 창업, 태블릿PC와 핸드폰 등을 판매했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화웨이, 노키아 등에서 연락이 왔다. 네트워크 장비를 줄 테니 팔아보라고 했다. 그해 겨울 화웨이 장비를 받았다.

'역전의 용사'가 돌아왔다. 늘 해왔던 일이다. 화웨이의 전송 네트워크 장비를 기간통신사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게 대규모 사업 수주였다. 큰 프로젝트의 구축 경험이 있어야 굵직굵직한 사업을 수주하는 데 유리해서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30억원 규모의 코스콤(증권) 전국 백본망 사업을 수주했다. 그토록 바란 바이지만 수주 이후 고달픈 삶이 이어졌다.

'결제 인터벌' 때문이다. 이를테면 A 사에서 장비를 구매한 B 업체가 C 기관에 해당 장비를 구축(납품)하려고 할 때 B는 A의 장비를 구매해야 C에 설치할 수 있다. 구매 대금은 미리 지급하고 구축 대금은 한참 뒤 받는 구조다.

이 때문에 작은 기업은 대규모 수주를 해도 문제다. 장비 살 돈이 없어 구축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발주처가 소규모 업체에 일을 안 맡기려고 하는 까닭이다.

정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돈도 없었다. 일단 집부터 팔았다. 짐을 싸서 처가댁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처가 형편이 조금 나았다. 처가엔 땅이 좀 있었다. 이 땅을 담보로 대출도 받았다.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들에게도 손을 벌렸다. 정 대표는 이때 2가지를 깨달았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진짜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구나.'

파란곡절 끝에 해당 프로젝트를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자동차 그룹망, 삼성 SDS BcN망, 롯데그룹망 등 대규모 사업을 잇달라 따냈다. 현재는 화웨이의 국내 최대 파트너가 됐다.

◇주식을 나눠 가져야 '진짜' 함께하는 것

"너 어떡하려고 그러냐. 고정비 올려놓으면 나중에 감당 안 된다."

정 대표가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얘기다. 씨스존의 신입 사원 연봉은 대기업 수준에 달한다. 인센티브를 포함, 부장급 연봉은 대략 7000만원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CEO의 생각에 달려 있다"면서 "'회사가 CEO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 한다"고 했다. 이어 "훗날 2세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며 "우리 구성원 또는 외부 전문가가 지속 경영을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스존은 자유로운 회사다.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터치'가 없는 곳이다. 정 대표는 "'구성원 만족'이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회사 가치를 올린다"면서 "이 가치를 다시 구성원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특히 그는 "함께 가자고 구성원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라며 "임직원이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진짜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 IPO(기업공개)를 계획 중이다.

한편 씨스존은 미래 먹거리를 위해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고 있다. IoT(사물인터넷), 물류, 에너지IT 등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했다. 이들 분야에서는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모두 직접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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