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이라 쓰고 '대필'이라 읽는다… 대입 자소서 '천태만상'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손소원 인턴기자, 원은서 인턴기자, 최동수 기자 2018.07.30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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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시 원서접수 앞두고 100만원 넘는 컨설팅 성행… "대필 잡아내기도 어려워 대책 유명무실"

 다음달 2019학년도 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다. 사진은 지난해 2018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당시 서울 성동구 모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장면./사진=뉴스1 다음달 2019학년도 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다. 사진은 지난해 2018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당시 서울 성동구 모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장면./사진=뉴스1


#. 대입 자기소개서(자소서) 작성을 시작도 못한 서울시내 일반고 3학년 재학생 최모양(19)은 최근 불안한 마음에 입시 컨설팅 업체에 대필이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본인이 얼마나 글을 써야하는지 묻자 업체 관계자는 "학교 활동을 줄글로 달라"고 했다. "컨설턴트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보고 자소서 작성에 필요한 키워드를 주면 이에 맞춰 (자소서 형식이 아니라) 줄글로 자신의 경험을 작성하기만 해도 학생의 할 일은 끝"이라는 것이다.



대필 비용은 수시 지원 대학이 몇 곳인지와는 관계없이 120만원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다만 학생들이 컨설팅 없이 자소서만 맡기면 수시전형을 잘 몰라 불합격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최양은 60만원을 추가지불하고 컨설팅도 받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9월 대입 수시모집 원서마감을 앞두고 올해도 어김없이 고액 컨설팅이 성행하고 있다. 컨설팅이 자연스레 자소서 대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적발이 힘들다는 점을 악용한 대입 컨설팅 업체, 고액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명문대생, '입시 한 방'을 노리는 학생·학부모의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대입 컨설팅 학원들은 학부모에게 공공연하게 돈을 더 주면 자소서를 써주겠다고 부추긴다. "수능 막바지 준비로 학생은 자소서를 쓸 시간이 없으니 글을 쓸 기초자료만 주면 자소서를 만들어주겠다"는 식이다. 첨삭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대필에 가깝다.

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모든 컨설턴트들이 자소서 대필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학부모가 학생부와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설명을 녹음한) 육성 녹취록만 가져오면 자소서 하나쯤은 뚝딱 만들어주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학원들은 명문대생에게는 웃돈을 얹어주겠다며 자소서 대필 아르바이트를 권한다. 해외대학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자소서 첨삭 아르바이트를 했던 서울 명문대생 김모씨(25)는 3년전 자연스레 대필을 권유받았다.


업체 측은 "자소서를 아예 뒤엎느니 선생님이 새로 작성하면 학생과 선생님 모두 편하고 보수도 2~3배 세다"고 김씨를 유혹했다. 김씨는 "학생이 미국대학 4~5곳을 지원하는 경우 아르바이트생이 가져가는 금액은 최소 500만원 이상이기에 대필을 거절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소서 첨삭이나 대필이 성행하는 것은 실제 합격 사례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학생부종합전형 대비 학원에서 근무했던 대학생 박모씨(24)는 경기도의 공립고 출신 학생의 명문 사립대 영어 자소서를 대신 써줬다.

박씨는 "해당 학생의 학생부도 보지 못한 채 몇 가지 교내활동내역만 가지고 자소서를 써줬다"며 "'영어로 글 한 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던 학생이 오로지 자소서 등 각종 서류만 100% 반영하는 1단계에 무난히 합격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해마다 반복되는 자소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13일 6차 대입정책포럼에서는 2022학년도 자소서를 문항당 500~800자의 사실기록 중심으로 축소하고 대필, 허위작성시 의무적 탈락 혹은 입학취소 조치하겠다는 개편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 과장은 "자소서 대필을 잡아내기 위해 대학들마다 자소서 유사도 검증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먼저 이 이스템을 강화하는 것을 주문하고 있다"며 "현재는 대필이 발견되면 0점 처리 되는데 2022학년도 대입부터는 자소서 허위기재나 대필이 확정되면 무조건 그 전형에서 탈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자소서 비중을 축소시킬 계획"이라며 "학교생활기록부를 최대한 활용하고 자소서나 교사추천서는 받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이 대필 거래가 이뤄졌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아 대책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소서 유사도 검증 시스템은 각 대학에 제출된 3년치 자소서와 당해년도 지원자의 자소서를 비교해 표절을 잡아낸다. 다른 사람이 아예 새롭게 써준 대필 원고를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글쓰기 과정에서 첨삭 자체를 범죄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는 대필과 첨삭을 구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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