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방치 또 '판박이'… 다시 들끓는 어린이집 불안감

뉴스1 제공 2018.07.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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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들, 자녀 불이익 우려 CCTV 열람도 '멈칫'
전문가 "재발방지책보다 보육교사 의식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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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강서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생후 11개월된 남자 아기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어린이집 교사 김 모씨(59)는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서 몸을 누르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이날 긴급체포 됐다. 19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사건 발생 어린이집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18.7.1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지난 18일 서울 강서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생후 11개월된 남자 아기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어린이집 교사 김 모씨(59)는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서 몸을 누르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이날 긴급체포 됐다. 19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사건 발생 어린이집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18.7.1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 2014년 11월 12일. 서울 관악구 한 어린이집에서 11개월 된 영아 A군이 엎드려 눕혀진 상태로 머리끝까지 이불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자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한 달 후쯤 A군은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했다. 당시 폐쇄회로(CC) TV에는 보육교사 B씨(36·여)가 아이를 두께 5~6㎝ '목화솜요' 사이에 넣어 눕힌 뒤 다리로 누르며 재우는 듯한 장면이 담겨있었다.

#. 2018년 7월 1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보육교사 김씨(59·여)가 11개월 된 남자아이를 엎드리게 한 뒤 이불을 씌우고 올라타 누르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이 아이는 숨졌고, 김씨는 "아기가 잠을 자지 않아 억지로 잠을 재우기 위해 그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 2016년 7월 2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의 한 유치원에 다니는 4세 어린이가 불볕더위 속에서 통학버스에 8시간가량 갇혀 목숨을 잃었다.

#. 2018년 7월 17일. 경기도 동두천시 한 어린이집 통원 차에 올랐던 A양(4·여)은 미처 내리지 못했고 7시간이 지난 뒤에서 발견됐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에서 2~3년 간격을 두고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사건 발생 지역만 달라졌을뿐 상황은 그야말로 '판박이'다.

부모들이 더욱 불안한 이유는 그간의 사고 유형이 전혀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20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정모씨(30·여) 입에서는 탄식부터 흘러나왔다. 정씨는 15개월 딸을 둔 '워킹맘'이다.

정씨는 "정부에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장려하지만, 이러한 사고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데 어떻게 안심하고 아이를 키우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구타, 학대 등 도 문제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인 학대가 있을까봐 더욱 걱정"이라고 했다.


3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최모씨(35·여)도 "사실 현재는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의심된다"며 "사건이 있든 없든 CCTV를 주기적으로 돌려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집 학대'라는 단어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자 수도 없이 쏟아진 기사를 보여주며 "보육교사분들 모두가 문제는 아닐 테지만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학대 뉴스가 뜨면 사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어린이집 학대가 끊이지 않자, 2015년엔 정부도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개정된 영유아 보육법은 3개월 이내에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보호자가 영상을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반발하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나중에 자녀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CCTV를 보여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최씨는 "열람요청서를 내도 어린이집에서 (영상을) 삭제하고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라며 "요청해도 거절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과 교육 강도를 높이고, 업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1년 반 정도 관련 교과목을 이수만 하면 된다. 재교육도 2년에 한 번 비디오 시청과 집합 교육이 전부인 상황이다. 단순 몇시간 교육만 이수만 하면 되는 등 보여주기식 교육에 그친다는 얘기다.

더욱이 민간 어린이집은 정부의 인건비 지원도 없어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의 월급이 50만원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민간 어린이집 교사는 자주 바뀌고 근무 환경도 열악하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정부의 재발방지대책은 때마다 나오지만, 문제는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아직 못 따라간다는 것"이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권 종사자들의 의식부터 전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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