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용부적합' 판정을 받은 서울시 주요 약수터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시 서초구 청계산 원터골 약수터, 서울시 양천구 신정산 약수터, 서울시 금천구 호천약수터, 서울시 구로구 항동 약수터) /사진=최동수, 김영상 기자
#18일 오후 6시30분 서울시 금천구 삼성산. 하루 평균 650명이 찾는 '호천약수터'의 음용부적합 경고문 옆으로 시민들이 몰통을 들고 나타났다. 이모씨(여·31)는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문제가 없어 먹고 있다"며 "예전부터 이용해왔기 때문에 많은 주민이 그냥 이용한다"고 말했다.
22일 서울시청과 국립환경과학원 토양지하수정보시스템(SGIS) 등에 따르면 올 1분기 서울시에 등록된 220개 약수터 가운데 79개가 '음용부적합', 95개가 '음용적합' 판정을 받았다. 220개 약수터 가운데 46개는 물이 일시적으로 고갈된 곳으로 실제 물이 흐르는 약수터는 174개다. 시민들이 이용 가능한 약수터 가운데 45.4%는 오염된 셈이다.
문제는 음용부적합 판정을 받은 79개 약수터에서 물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79개 약수터 가운데 오염원을 제거하고 소독 등의 조치가 이뤄진 약수터는 4개소에 불과했다. 약수터 주변을 정비하고 음용부적합 안내판을 붙여둔 약수터는 18개소에 그쳤다. 나머지 57개 약수터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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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폐쇄는 시설의 상태와 주변 환경, 문화적 가치 등을 고려해 구청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오염이 지속해도 당장 약수터에 물 공급을 차단하는 규정이 없는 것이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산속에서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 실제 막으려면 큰 비용이 든다"며 "안내판을 설치하고 알리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구청 관계자는 "음용부적합을 알려도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아 물 공급을 중단하면 '물이 왜 안 나오냐'고 항의한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시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청과 서울시에서 음용부적합 판정이 나온 약수터의 물 공급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총대장균군이 검출된 물은 다른 세균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인섭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총대장균이 검출됐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안에 다양한 병원균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커 절대 먹으면 안 된다"며 "음용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적합판정을 받을 때까지 물 공급을 중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산속 약수터 등 물 공급을 부득이하게 중단할 수 없는 곳에서는 물이 나오는 곳을 페트병으로 감싸거나 바가지 등을 치우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원철 강원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음용부적합이라는 판정을 받은 만큼 특별히 문제가 있을 확률은 점점 높아질 수 있다"며 "국민들이 위생에 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점점 더 높은 수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