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국회/사진=머니투데이DB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게 정치다. 개헌 논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사그러진게 아니다. 사법개혁, 경제개혁, 농업개혁, 교육개혁, 국방개혁 등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 구조가 확인됐다. 확인된 갈등을 성숙된 논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소시켜나가는지가 정치권과 각 사회계층의 몫으로 남았다. 논의가 성숙되면 시선은 다시 개헌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동력이 확보된다는 거다.
개헌의 타깃은 영장청구권이었다. 박정희정권 이후 검사에게만 부여된 영장청구권을 경찰에 나눠주자는게 논의의 핵심이었다. 영장청구권을 바탕으로 수사권, 수사지휘권과 종결권이 모두 검찰이 행사해 왔다. 검경 수사권조정에서 이 내용은 제외됐지만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다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농업계도 헌법의 전근대적인 규정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행 헌법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고수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거다. 뿌리 깊은 소작제에 기인한 개념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과 농지개혁을 거치면서 경자유전 원칙과 농지대여 불허 원칙이 헌법에 명시됐다. 당시엔 꼭 필요한 개념이었다.
현재의 개념은 더 복잡하다. 경자유전 원칙 폐지론자들은 대규모 기업농의 탄생을 위해 경자유전 원칙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농업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형 기업농이 성장할 수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반면 경자유전의 둑을 무너트릴 경우 농산물의 자급자족을 통한 식량자원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향후 전국민적 공론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는 일단 경자유전 존치를 결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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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 정책시리즈 스물한번째 -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 자치분권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조정해 지자체들의 재정을 건전화하고 별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려 했다. 그러다보면 지방자치 경찰제도, 교육이 지방자치 등 영역이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다는 거다. 이 역시 향후 개헌의 핵심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출산율과 취업 등 기본적 지표의 개선을 위해서도 수도권과 지방의 각종 격차 해소는 꼭 필요한 요소다.
성평등 이슈는 개헌의 기본권 논의 과정에서 가장 찬반양론이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배려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동성애에 대한 호의적 시각이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진영과 종교계는 극렬히 반대한다. 핵심은 헌법 상 현행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성평등으로 변경하느냐 마느냐다. 조문 변경 자체가 이른바 '제3의 성'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국민 여론이 양분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종교의 영역이 개입되는 게 문제다. 동성애 반대의 핵심에 개신교단이 있다. 보수진영의 정치적 수요가 이와 얽히면서 더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회에 참가하는 등 현장에서 움직이는 보수지지층의 상당수가 종교인들이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보수 결집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의사당 로텐더홀 벽면에 장식된 제헌국회의원 부조/사진=머니투데이DB
이후 격동의 근대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 온 헌법은 개정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32년간 새 모습을 찾지 못했다. 새 정부 들어 국회 차원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힘을 모아 개헌 작업에 나섰지만 결국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사실상 개헌 시한을 넘겼다. 촛불혁명으로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온국민이 다시 깨달은 시점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