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여자! ‘미스터 션샤인’의 구한말 요리법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2018.07.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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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87 – 여전사 : 꽃처럼 사는 대신 총을 겨누다

총을 든 여자! ‘미스터 션샤인’의 구한말 요리법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대사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더구나 구한말(舊韓末 :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까지)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감각도 감각이지만 통찰이 없으면 대사의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 극 초반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어려운 걸 해내고 있다.



사실 구한말 시대극은 그동안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국인에게 구한말은 패배의 역사로 기억된다. ‘개화기(開化期)’지만 개화를 잘못해서, 나라가 망하는 ‘망국기(亡國期)’로 끝났다. 게다가 외세 침략과 내부 모순이 뒤엉켜 혼란스러운 시대이기도 했다. 뭔가 어둡고 무거운 구한말이다. 시청할 맛이 안 난다.

그럼 구한말 시대극이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꾸로 구한말에 활기를 불어넣으면 된다. 물론 황당한 설정은 곤란하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문제 삼자는 게 아니다. 시대극도 기본적으로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 개연성은 따져볼 일이다. 시청자는 열정적인 몰입자인 동시에 냉정한 관찰자다. 가상 스토리에 뜨겁게 빠지면서도 그 시대에 일어날 법하지 않은 전개는 차갑게 외면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극중 인물을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시대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뚫고 일어서는 캐릭터를 구축해야 드라마에 활력이 차오른다. 그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가야’ 구한말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사는 한두 줄에 불과하지만 시대를 요리하는 레시피가 담겨있다.

여기서 ‘각자(各自)’는 각각의 자신이다. 세상이란 원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인간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그랬을 것이다. ‘논어’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구절이 있다. 어우러지되 휩쓸리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공자님이야 성인(聖人)이니까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네 인생은 ‘어울렁 더울렁’ 살면서 노상 이리저리 휩쓸린다.

구한말 같은 격변기에는 그 휩쓸림이 급류가 된다. 외세의 태풍과 맞닥뜨려, 시국의 풍랑에 뒤집어져, 도처에 떠내려가는 사람 천지다. 이런 시대를 버텨내는 힘은 격변에 휘청거리다가도 자기중심을 잡으며 뚜벅뚜벅 나아가는 각자의 카리스마! 흔들릴 때도 있지만 도장 찍듯이 꾹꾹 길을 밟아 족적을 남기는 그들의 여정이 드라마가 된다.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은 그래서 끌린다. 이 조선 최고 명문가 아씨는 규중 여인의 숙명을 팽개치고 위태로운 나라의 운명에 관심을 둔다. 기별지(奇別紙 : 조정 신문)를 보게 해달라며 할아버지와 맞선 손녀. 극중 언쟁도 재미있다. 2009년작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과 미실이 백성의 희망과 환상을 두고 벌인 6분 토론처럼 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조선은, 변하고 있습니다.”
“틀렸다. 조선은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고, 프랑스고, 독일이고 앞 다퉈 조선으로 들어오는 시국이다. 종주국을 자처하는 청나라는 사사건건 내정에 간섭하고, 국경을 맞댄 러시아는 호시탐탐 이권을 노린다. 일본은 군대까지 들여보내 조선 백성들을 학살하고 남의 땅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나라의 운명이 이러할진대 군주와 조정은 무얼 하고 있는가. 애신은 답답했다.

“천민도 신학문을 배워 벼슬하는 세상이온데 계집이라 하여 어찌 쓰일 곳이 없겠습니까?”
“쓰이지 마라. 단정히 있다가 혼인하여 지아비 그늘에서 꽃처럼 살아라. 나비나 수놓으며 살아. 화초나 수놓으며 살아. 그게 그리도 어렵단 말이냐?”

개화는 신분제도의 변화를 몰고 왔다. 종의 아들딸이 학당에 다니며 신학문을 터득하고 ‘쏼라쏼라’ 영어를 하는 시대. 출세는 더 이상 양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에게 채워진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족쇄는 풀리지 않았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섬기며, 늙고 나면 아들에게 의지하는 삶. 여인의 존재이유는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집안에 기여하는 것뿐 바깥세상에서는 쓰임이 없었다.

나비나 화초를 수놓으며 지아비 그늘에서 꽃처럼 살라는 할아버지의 당부. 의병 활동을 하다가 떠난 자식을 가슴에 묻었으니 손녀까지 허망하게 잃고 싶진 않았으리라. 애신은 꽃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대든다. 결국 그녀는 꽃 대신에 소총을 들었다.

“글은 힘이 없습니다. 저는 총포로 할 것입니다.”

1895년 국모 명성황후가 일제에게 참혹하게 시해 당하자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그곳에서 서구 열강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알맹이 없는 애매한 답변뿐이었다.

애신이 보기에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알량한 글은 소용이 없었다. 힘이 모자라 당하는 거니까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 마침내 그녀는 백발백중의 저격수로 변신한다. 낮에는 조신한 명문가 아씨지만 밤이 되면 지붕을 넘나들며 국적(國賊)의 심장에 총을 겨눴다.

그 이미지는 일제강점기에 총을 들고 싸운 여전사들과 닮아있다.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은 1933년 권총과 폭탄을 숨긴 채 만주국 일본대사를 암살하러 가다가 하얼빈 교외에서 체포돼 고문을 받고 숨졌다.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은 1939년 조선의용대 여성대원들을 이끌고 중국 곤륜산 전투에 참가해 부상을 입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사는 권력을 쥔 자의 전유물이었다. 남성 위주로 쓰인 역사기록에서 여성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독립운동사에서 여전사들의 활약이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구한말 이후 여성들의 각성과 분투, 인내와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일제강점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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