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원장이 뭐길래?…'상원의장' 역할, 권한남용 비판 거세

머니투데이 안재용 기자 2018.07.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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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답답한 국회, 상임위 진통]①체계·자구 심사 권한, 법안 '게이트 키핑' 역할

법사위원장이 뭐길래?…'상원의장' 역할, 권한남용 비판 거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0대 하반기 원구성의 ‘뜨거운 감자’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법사위원장 배분에 막판까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각종 개혁·민생 입법을 지연시켜온 법사위에 대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통상적으로 법사위원장은 원내 2당이 차지해 왔다. 본회의 직전 법안의 마지막 입구 역할을 하는 상임위를 제2당이 맡아 국회의장을 맡는 원내 1당을 견제하라는 명분이었다. 정치권 관례로 보면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챙기는 것은 이례적이다.



여당의 논리에도 일리는 있다. 법사위는 그동안 개별 상임위서 합의된 법안의 처리를 지연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사위원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이 법사위에 오더라도 상정을 안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를 지연시켰다. 여야간 정쟁 과정에서 법사위 법안소위로 넘겨지면 법사위 전체회의로 돌아오기까지 수개월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법사위는 "'상원 놀음'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법사위의 숨겨진 힘, 체계·자구 심사권 =
법사위는 본래 법무부와 법제처, 감사원, 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관련 사항을 다루는 상임위다. 검경수사권 조정이 대표적 이슈다. 지난 2016년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법사위 소관사항 중 '법률안·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항 사항'이란 항목 때문이다.

법사위에서 법안의 '체계'를 심사한다는 것은 내용의 위헌 여부와 관련 법률과 저촉여부, 자체조항간의 모순 유무 등을 다루는 것을 말한다. '자구' 심사는 법률용어의 적합성과 통일성을 심사하는 것을 뜻한다. 같은 의미의 행위를 두고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 노동법에서는 '노동'이라 부르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체계·자구 심사는 전체적인 법체계상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모든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이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 법사위가 본회의로 가는 마지막 문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에 머물지 않고 법안 내용을 수정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일종의 상원 역할을 하게 됐다.

국회는 개별 상임위에서 법안을 심사토록 하고 있는데 법사위에서 법안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빈번해진 것이다. 특히 여야간 이견이 큰 쟁점법안의 경우 상임위 심사안 그대로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 법안은 법사위원장 마음대로?=문제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법사위의 위원장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데 있다. 법사위원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국회 법안처리 전체를 '합법적'으로 멈출 수 있다.


상임위원장은 국회법 제49조2항에 따라 위원회의 의사일정과 개회일시를 간사와 협의해 정할 수 있다. 간사와 협의한다는 단서조항이 있긴 하지만 위원장이 거부하는 경우 사실상 상임위 전체회의 개최가 불가능하다. 위원장 부재 시 대리에 대한 규정이 있긴 하지만 부재가 아닌 거부의 경우에는 임의로 위원회를 열기 어렵다.

의사 일정을 정한다는 규정도 강력하다. 상임위 의사 일정이란 전체회의에서 회부될 법안과 처리순서를 말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위원장 동의 없이는 법안이 회부되지도 못할 수 있다. 회부되더라도 뒷순번으로 미뤄 지연시키는 게 가능하다.

실제 권성동 전 법사위원장은 지난 2월6일 전체회의에서 "여당의 유감표명이 있을 때까지 법사위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이 권 위원장의 강원랜드 취업비리 수사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법사위원장 사퇴를 압박하자 이에 반발하면서다. 여야간 공방의 옳고 그름을 제쳐놓더라도 이 선언은 2월 임시국회 공전에 큰 영향을 줬다.

법안심사2소위 문제도 있다. 법사위원장은 상정된 타상임위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2소위에 보낼 수 있다. 2소위에 회부된 법안은 논의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계류된 법안이 많기 때문이다. 바쁜 정치 일정 속에서 소위심사일을 잡기도 쉽지 않다. 10일 현재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수는 934개에 이른다. 이 중 타상임위 법안만 해도 137건이다.

법안 내용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9월 정무위는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외감법)을 개정하며 유한회사에 대한 예외조항을 삭제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법사위에서 부활했고 그대로 본회의를 넘었다. 담당 상임위의 심사권이 침해된 사례다.

◇법사위 '상원놀음' 멈추자, 국회법 개정 움직임 = '꼬리가 개를 흔드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계속되면서 법사위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우원식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월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외에 법안의 본질적인 내용을 수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의 이슈도 법사위 전횡방지다. 민주당은 원구성 협상과정에서 △타 상임위 소관 부처 장관 출석요구 금지 △체계·자구 심사 범위 제한 △심사기간 축소(120일→60일) 등을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법사위의 실질적 권한 축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의 권한을 침범해 법안 내용을 수정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며 "체계·자구 심사를 다른 법과의 체계, 위헌성 여부 등에 국한해 법안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120일인 심사기간도 지나치게 길다"며 "효율적 국회를 위해서라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사위원장이 뭐길래?…'상원의장' 역할, 권한남용 비판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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