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위의 판사가 통역인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본다. 통역사는 우물거리며 답을 못하지만, 곧 판사의 한숨과 함께 재판 절차는 그대로 진행된다. OOOO스탄. 이 나라의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하물며 통역이 제대로 됐는지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1년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재판 당시 국내로 압송된 해적들의 소말리아어를 공판 과정에서 곧바로 한국어로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무했다. 결국 각국 공관에 있던 외교통상부 직원들까지 총동원됐다. 1명의 재판에 많게는 4명의 통역이 들어가기도 했다.
법정통역에 대한 법령은 2013년 개정된 '통역·번역 및 외국인 사건 처리 예규'가 유일하다.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통역 제공의 방식과 범위, 통역사의 자격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령은 국내에 없다.
그러다보니 각급 법원이 법정통역인을 뽑을 때도 통일된 선발기준이 없다. 이력에 대한 서면심사만으로 선발이 이뤄진다. 일단 통역인 '풀'에 포함되면 연 1회의 형식적 교육만 이뤄진다. 이 교육 프로그램 내용조차 전국적으로 통일돼 있지 않다. 통역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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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사는 "윤리·자질에 대한 별다른 검증절차 없이 유학·거주 경험 등이 있으면 대부분 후보자를 선발하고 있어 통역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현재 상당한 수의 후보자가 국내에서 통번역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A변호사는 "통역인이 국내 형사소송절차 용어에 대한 이해가 없어 발언 내용을 의역하려 해 내가 직접 피고인에게 통역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난민소송에선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오역을 넘어 편향성 문제까지 제기된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네팔, 파키스탄 등 소수 언어 통역에서 인종이나 정치, 종교적 편견을 가진 법정통역인은 신문사항이나 답변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거나 누락하기도 한다"며 "법관의 사실인정에 중대한 방해요소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 언어는 각 재판과정에서 통역의 중립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아 법관은 통역을 그대로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소수언어 통역인의 경우 인력난이 가장 큰 문제다. 이른바 '3대 주요 언어'인 영어, 중국어, 일본어 통역인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반면 미얀마어나 네팔어, 키르키즈스탄어 등 소수언어는 통역인을 확보하기조차 어렵다. 외국인 소송을 다수 경험한 한 변호사는 "소수언어 통역인이 불참해 재판 자체가 연기되기도 한다"며 "어떤 소수언어는 경찰 수사, 검찰 수사, 법원 재판까지 한명이 다 통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