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2년차 연구원의 '주 52시간'

머니투데이 김유경 기자 2018.07.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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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죄송하지만 일 좀 더 하면 안 될까요.” “나랏법이 못하게 하는데 어떡하노.”

경북 구미의 한 중견기업이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한 달 앞두고 6월부터 예행연습을 할 때 직원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다. 주52시간 준수라는 ‘특명’을 받은 관리자와 저녁 늦게까지 더 일하고 싶어하는 2년차 연구원은 그렇게 ‘이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회사의 근무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다. 이 회사는 오히려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근무시간을 기존보다 3시간씩 연장했다.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근무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까지로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10시간이다. 수요일엔 오후 5시30분까지 퇴근해야 한다. 이렇게 총 근무시간 48시간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지키기로 했다.



장비를 만드는 이 회사는 임직원 700여명 중 85%가 엔지니어다. 종전 엔지니어들의 근무시간은 사실상 무제한이었기 때문에 ‘주52시간 근무제’로 이들의 근무시간은 줄어들 게 확실하다.

문제는 오히려 직원들이 일을 더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다. 관리자가 퇴근하라고 지시해도 실력을 쌓기 위해 또는 성과를 내기 위해 자정이 넘도록 일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직원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퇴근 후 집에서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지만 엔지니어들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선 현장(장비가 갖춰있는 회사)만큼 좋은 학습장이 없다”며 “시간규제로 연구원들이 일을 못 하게 하는 건 정부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라의 경쟁력마저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중요한 가치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은 확실히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회사의 600여명에 달하는 엔지니어 역시 모두 자정까지 근무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납득하긴 쉽지 않다. 이미 야근과 휴일근무가 잦은 ICT(정보통신기술)업종의 경우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인정 여부에 대한 찬반논란이 거세다. 근로자 중에도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을 환영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모두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주52시간 근무제’가 근로자를 위한 것이라면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도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우보세]2년차 연구원의 '주 5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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