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톤빌 철학의 이재용 vs 로체스터 마인드 구광모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한민선 기자 2018.06.2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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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 4.0 시대]폭넓은 해외경험과 신사업, 차세대 오너십 핵심…한국 사회 녹아들 방법 고민해야

크로톤빌 철학의 이재용 vs 로체스터 마인드 구광모


'폭넓은 해외 경험과 글로벌 기업 근무, 고도화된 신사업을 통한 능력 입증'

한국 기업 오너 3~4세들의 공통점이자 1~2세와 그들을 구분 짓는 차이점이다. 고도화된 산업구조 속에 세계시장에서 새 먹거리를 찾고, 기업시민으로서 경영능력도 인정받아야 하는 3~4세들은 창업·개척정신을 최대 무기로 삼은 그들의 선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기업들이 경제·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오너십 구축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여기에 담긴 셈이다.

3~4세가 20~30대에 아버지 기업에 발을 들여 경영수업을 쌓은 전반적 구조 자체는 2세들과 큰 차이가 없다. 10대 기업(자산규모 기준, 비 오너사 제외) 3~4세들이 그룹 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평균 나이는 39.4세. 38.4세인 2세들과 비슷하다. 입사 후 CEO 선임까지 걸린 기간도 약 10년으로 아버지 세대와 대동소이하다.



가장 큰 차이는 글로벌 경험. 이는 '전자 맞수' 삼성과 LG 차세대 경영인들의 행보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3세 경영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공채 32기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입사 후 CEO 자리에 올라 본격적 경영에 나서기까지 약 19년이 걸렸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회장 역시 이 같은 길을 밟아나가는데 10년이 넘게 필요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했다.



이 부회장과 아버지 경영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인재 사관학교로 일컬어지는 '크로톤빌 연수원' 경험이다. 이 부회장은 34세의 나이로 2002년 외부 기업인으로서 최초로 크로톤빌에서 연수했다. 이 부회장은 경쟁력 없는 사업은 과감히 매각하고 될성부른 사업은 인수합병한 잭 웰치 GE 전 회장의 경영관을 흡수했다.

삼성이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방산·화학 사업을 한화와 롯데에 넘긴 배경이 여기 있다. 대신 인공지능(AI)과 바이오 등 고도화된 사업 영역에서 새 먹거리를 모색한다. '세계 1위'라는 지향점은 아버지와 같지만, 접근법이 달라진 것이다.

LG그룹 4세 경영인 구광모 LG전자 상무 역시 아버지 고(故) 구본무 회장처럼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주립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아버지와 달리 구 상무는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로체스터는 공과대학으로 분류되지만, 디자인과 예술에 강점을 가진 학교다. 입학 과정에서 창의성과 디테일, 인문학적 소양 등도 높게 본다. 공학과 디자인, 예술의 결합을 통해 실용성을 추구하는 학풍으로 유명하다. 인문학적 소양과 이공계 지식을 두루 갖춘 새로운 그룹 인재상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구 상무는 AI 등 정보기술과 4차산업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공계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가치와 감성까지 챙겨야 하는 미지의 해당 사업영역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3세 정의선 부회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해외 유학경험이 없는 것과 차이가 있다. 정 부회장은 글로벌 모터쇼에서 직접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정 부회장은 수소전기차 등 새 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1960년생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세 경영인이지만 이건희, 정몽구 회장보다 젊으며 이재용, 정의선 회장 등 3세와 오히려 더 가깝다. 1991년 그룹에 입사했고 1998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했다. 세계경제포럼(WEF) 동아시아지역경제지도자회의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글로벌 경험이 풍부하다.

3~4세 경영인 중 바뀐 시대의 새로운 오너십 마련에 가장 적극적이다. 사회적가치와 경제적가치 양립을 새 경영철학으로 내세워 '뉴SK' 구축에 매진 중이다. 활발한 해외기업 투자로 모빌리티 사업 등 새 먹거리 발굴에도 주력한다.

이 밖에 GS그룹 4세 경영인 중 가장 먼저 CEO 직함을 단 허세홍 GS글로벌 대표(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와 한화그룹 3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하버드대학 경제학 학사), 현대중공업그룹 3세 정기선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도 모두 해외 유학경험이 있다. 허 대표와 정 대표는 각각 셰브런과 보스턴컨설팅 그룹 등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밖에서 공부하며 세계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봤다는 것은 분명 좋은 경험"이라며 "하지만, 효율과 불균등에 대한 정서가 다른 한국적 환경에 이를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둘을 조화하는 경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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