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스토리]"블루투스 이어폰,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다"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18.06.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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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프렌, "블루투스 이어폰, 세계 최고 음질과 편의 기능 자신"...CJ E&M과 상생협력

허주원 모비프렌 대표/사진=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허주원 모비프렌 대표/사진=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바벨탑 증후군

'사옥을 높게 지으면 기업 운이 쇠락한다'는, 예전 한때 떠돌았던 속설이다. 비슷한 말들도 난무했다. '사옥을 크게 지으면 그 기업은 망한다' '잘 나가는 기업도 사옥만 지으면 힘들어진다' 등의 식이다.

이 속설을 비켜 가지 못한 이가 있다. 블루투스 전문기업 모비프렌(구. 지티텔레콤)의 허주원 대표다. 2002년 회사를 차리자마자 승승장구했다. 창업 3년 만에 개발 인력이 180명이나 됐다. 이듬해 바로 사옥을 신축한다. 짓기도 잘 지었다. 그해 '경북 구미시 아름다운 건물' 금상을 수상했을 정도.



신사옥으로 입주할 때까지만 해도 이랬다. "조만간 이 사옥도 차고 넘쳐 공간이 부족하리라."

전자공학도였던 허 대표는 1984년 삼성그룹 공채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13년 8개월 동안 개발 업무를 하다 1998년 퇴사한다. 이후 영진전문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 중소기업 등에서 통신 제품의 용역 개발을 맡았다. 하루는 삼성에서 근무 중인 옛 동료들이 찾아왔다.



"요즘 회사가 용역 개발을 확대 중인데, 한번 해 보지 않겠느냐."

모비프렌의 전신 지티텔레콤은 2002년 이렇게 태어났다. 삼성전자 개발협력사로, 휴대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용역 개발했다. 회사는 급성장했다. 2002년 초 8명으로 출발한 회사의 개발 인력은 그해 말 40명으로 늘었다. 2003년에는 100명으로, 2004년엔 180명으로 불어났다.

2005년 허 대표는 사옥을 짓기로 결정한다. 1983㎡(600평) 규모의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었다. 대출 받아 사옥을 지으면 대출 이자가 임대료보다 싸게 칠 거라 판단했다.


2006년 준공, 2월 입주한 모비프렌 사옥/사진제공=모비프렌2006년 준공, 2월 입주한 모비프렌 사옥/사진제공=모비프렌
지하 1층에 지상 4층짜리 건물을 멋들어지게 올렸다. 총 연면적은 3636㎡(1100평) 규모. 허 대표는 "회사가 워낙 가파르게 성장했던 터라 이 건물도 곧 모자랄 거라 생각했었다"고 했다.

2006년 2월 입주했고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삼성의 외주 개발 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외부 용역의 상당수를 자체 소화하기로 한 것이다. 5월엔 삼성 측에서 경영 진단이 있었다. 그때부터 신규 과제는 주어지지 않았다. 외주를 없앤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문도 돌았다.

'구조 조정'

피할 수 없었다. 180명이던 개발자들은 그해 겨울 60명으로 줄었다. 그 사이 허 대표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말문도 닫혔다. 집에선 "다녀올게" "다녀왔어"가 전부였다. 6개월 동안 그리 살았다. 사옥을 짓는 데 쓴 대출금도 문제였다. 엔화 대출을 받았는데, 엔화 폭등으로 갚아야 할 빚이 2배로 불어났던 탓이다.

"너무 잘되니까 잘못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진 않았죠. 결국 그렇게 되고 보니 가장 마지막 단계의 생각 끝자락엔 '가족'이 있더군요."

허 대표는 회사의 도산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내가 모든 걸 잃는다면 가족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도 스스로 냈다. '아내가 교편을 잡고 있으니 애들하고 당장 먹고 사는 데는 크게 지장 없겠지'

긍정이 긍정을 부른다고 했던가. 이리 생각하니 '가진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기술을 가졌다. 빚이지만 건물도 아직은 '우리 것'이었다. 설비·장비 등도 있었다.

이 무렵부터 블루투스 개발을 본격화했다. 주로 휴대폰을 용역 개발했지만 2005년 삼성 블루투스 이어폰을 개발한 적 있었다. 그 노하우로 제품을 직접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2007년 블루투스 이어폰 2종을 출시했다. 첫 작품이었다. 이 제품을 들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와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세빗'(CeBIT)에 참가했다. 고난의 나날이었지만 블루투스 이어폰 전문기업으로의 성장을 예고한 시점이기도 했다.

◇블루투스에 미치다.

그는 미쳐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세계 최고의 음질과 편의 기능을 갖춘 블루투스 이어폰을 만드는 데 말이다. 2012년부터는 음질 튜닝 작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허 대표는 "튜닝은 가청 주파수를 전 대역대에서 원하는 레벨로 설정하는 작업"이라며 "음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허 대표가 통밤을 새우며 음질 튜닝에 매달린 날은 숱했다. 처음엔 소니 제품을 기준으로 작업했다. 당시 소니 블루투스 이어폰의 음질이 좋다는 평가가 있어서다. 열흘쯤 지났을까. 튜닝 결과로 청음 테스트를 하니 왔다 갔다 했다. 어떨 때는 소니가, 어떨 때는 모비프렌이 더 나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기준으로 튜닝하면 어떨까' 그날도 역시 밤새 튜닝을 했다. 오전 6시28분 튜닝값을 직원 메일로 보냈다. 출근 즉시 해당 값을 적용한 시료로 음악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직원들도 모두 놀랄 만큼 고음질이었다.

이때부터 허 대표는 튜닝에 오롯이 미쳤다. 한 달 보름 동안 하루 평균 4시간만 잤다. 아내와도 종종 다퉜다. 온종일 이어폰을 꽂은 채 맥스 음량으로 음악을 들으니 청각 손상을 걱정한 아내가 잔소릴 할 만했다.

2012년 이렇게 나온 결과물이 'GBH-S400'이다. 이 제품부터 '유선 이어폰의 음질을 뛰어넘는 블루투스'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 이전 블루투스 이어폰은 '무선의 편리함'만을 주로 강조하는 데 그쳤다.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이런 음질이 나오는 게 놀랍다."

귓구멍에서 'GBH-S400'을 빼낸 작곡가 돈 스파이크의 첫마디였다. 이 인연으로 돈 스파이크는 모비프렌에서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음질 튜닝 관련 자문과 평가를 하고 있다.

◇세계 최고 음질을 향해...

2014년 그는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100만원대 해외 유명 유선 이어폰들을 사들였다. 블루투스 기술로 세계 최고의 '유선' 이어폰 음질을 따라잡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들 제품을 기준으로 튜닝에 다시 매달렸다.

같은 해 12월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를 하나 빌렸다. 129만원짜리 'W 유선 이어폰'과 123만원짜리 'A 유선 이어폰', 그리고 10만원대 '모비프렌 블루투스 이어폰', 3개를 나란히 놓았다.

무작위로 참여한 100여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청음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과는 '헉'이었다. 참여자들의 76%가 모비프렌을 선택했다. 이듬해 1월 미국 라스가베이거스 전시회에서도 청음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같았다. 해외의 '귀'들도 모비프렌에 압도적으로 빠져들었다.

S400을 필두로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출시된 모델들은 현재까지 10종이 넘는다. 허 대표는 세계 최고의 음질을 구현해 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녹록지만은 않았다. 허 대표부터 거의 대부분의 임직원이 개발자다. 홍보 마케팅 역량 부족으로 인한 판매량 저조에 애 마른 까닭이다.

고전을 거듭하던 중 모비프렌 유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아 판매량이 서서히 늘어갈 즈음이었다. 2016년 6월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시장 조사 결과 모비프렌 블루투스 이어폰이 가장 우수한 것 같다. 한번 키워 보겠다."

CJ E&M이 국내 총판권을 요청해 왔다.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과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기업의 상생 사례다. 허 대표는 "2016년 8월 CJ E&M과 국내 총판권 계약을 체결했다"면서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딱 맞는 데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우수 상생 사례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대...

한때 허 대표는 회사의 도산만을 상상했다. 늘 사로잠을 잤다. 그렇지만 지금의 모비프렌은 성장 일로에 있다. 삼성과도 아직까지 소프트웨어 개발 검증 업무를 진행 중이다. 17년째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허 대표는 "'진인사대천명'이 좌우명이 됐다"며 "현재 괜찮다면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뿐"이라고 했다.

배중사영(杯中蛇影)

'술잔 속 뱀 그림자'란 뜻을 담고 있다.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가 뱀인 줄 알고 삼켰다가 병이 들었는데, 훗날 활 그림자임을 알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에서 온 고사성어다. 있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의심해 근심함을 비유한 표현이다. 흔히 말한다. 지겹도록 듣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근심의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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