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철렁했던 순간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날벼락 같았던 취소 선언은 결과적으로 절묘한 수가 됐다. 북한이 체면 불구하고 손을 내밀면서 회담 열차는 이내 궤도로 복귀했다. 서로를 자극하던 날선 공방도 사라졌다. '지나치게' 적극적이던 중국도 한결 신중해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랬다. 그의 회담 취소 선언으로 북한은 자신들이 '을'의 위치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짝퉁시장 상인들이 돌아서는 고객을 붙들 듯 트럼프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갑'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이용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세계의 번영과 질서를 얘기하던 고상한 미국 대통령상을 미련없이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중 무역 충돌, 한미 FTA 재협상 등 협상 테이블이 열릴 때마다 판을 깰 수 있다는 으름장으로 어김없이 자신의 실익을 챙겨간다.
강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면 다른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지켜내기가 더 힘겨워지기 마련이다. 결국엔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 또 똘똘 뭉쳐야 한다.
당장 우리 앞엔 한반도 평화 체제 안착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놓여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한단계 더 도약할 기회다. 언어 장벽이 없는 새로운 내수시장이 생기고,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 자원, 인프라 개발 등을 매개로 다양한 산업 수요가 창출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 당 대표시절 남북한을 연결하는 신경제지도를 바탕으로 국민소득 5만 달러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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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우리 주변 강국들도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를 극대화하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철저하게 '갑'의 논리로 무장한 이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선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야권은 정치적인 고려 보다는 국익을 우선해야 하고 여권은 야권의 비판적인 시각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개를 외부로 돌리고 우리가 처한 위치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쟁의 정글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