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유가 100불시대 또 온다…가마솥의 공포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18.06.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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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 油價]①셰일 브레이커의 약화…정유·화학산업부터 충격 '체감물가' 잡아야

편집자주 지난주 전국 휘발유 1리터당 평균가격 1600원대. 3년 5개월만의 일이다. 국제유가도 2년 6개월만에 25달러에서 75달러로 세배가 됐다. 배럴당 100달러 시대의 도래 가능성에 원유 100% 수입국인 대한민국의 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유가 100달러 경고등이 켜진 현재 유가 변수와 한국경제가 받게 될 영향을 재점검해 본다.

 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5월 다섯째주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전주 대비 14.9원 상승한 1605.0원을 기록했다. 이는 휘발윳값이 6주 연속 상승하며 3년 5개월여 만에 1ℓ당 평균 1,600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5월 다섯째주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전주 대비 14.9원 상승한 1605.0원을 기록했다. 이는 휘발윳값이 6주 연속 상승하며 3년 5개월여 만에 1ℓ당 평균 1,600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지난주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이 3년 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리터당 1600원대(1609원)에 재진입했다. 2년여 전 배럴당 25달러대까지 떨어져 바닥을 찍었던 유가가 슬금슬금 오르더니 어느새 70달러 중반(두바이유, 브렌트유 기준)대에서 80달러대를 바라보고 있다. 저점 대비 세배에 달한다.

원유를 가공해 이문을 남기는 정유·화학산업은 저유가 시대를 맞아 한동안 '슈퍼사이클'이란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70달러대 벽을 뚫은 유가는 100달러 경고등을 울리며, 정유·화학은 물론 조선·항공·해운 연관 산업 전반에 변화의 신호를 알리고 있다.



◇100달러 끓는점 앞둔 국제유가…GDP의 5% 비중이 경고등 =3년간 유가급등을 막아온 것은 이른바 '셰일 브레이크'다. 슬금슬금 오르는 국제유가 상승국면에 100% 원유 도입국 한국은 이제 점차 뜨거워지는 가마솥 내부의 온도를 뒤늦게 체감하고 있다.
[MT리포트]유가 100불시대 또 온다…가마솥의 공포
유가 100달러라는 지표는 물의 끓는점인 섭씨 100도와 비슷하다. 시장 내의 비산유국가와 관련 산업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환경이다. 유가의 앙등은 1, 2차 오일쇼크를 불러왔고, 2008년 초 150달러에 육박했던 '100달러 시대'는 금융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유가의 거침없는 상승은 어쩌면 버블 경제 붕괴의 전조일 수도 있다.

1965년부터 6차례 겪었던 유가 변곡점은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대비 유가 비용의 비중이 5%에 육박할 때 도래했다. 이 시점에 세계 경기는 급격히 위축됐고 수요 감소로 유가는 다시 대세 하락으로 돌아섰다.



현재 유가 70달러 선에서 이 비중은 3% 수준이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3%의 글로벌 GDP 성장률과 1%의 원유 소비 증가율을 가정하면 내년 유가가 115달러가 될 때 이 비중이 5%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진 버퍼가 남은 셈이다.

유가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올라탄 것으로도 보인다. 유가가 115달러에 육박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글로벌 유가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만만찮다.

일단 중동정세가 불안하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으로 인한 핵확산 방지 협정 탈퇴 이슈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한동안 러시아와 베네주엘라 등 자신들의 이해와 맞지 않는 대형 산유국을 견제하기 위해 저유가를 용인해왔지만 이제 '해피아워'는 끝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네주엘라 등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면서 미국을 움직일 경계의 원인도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민관이 합동해 개발하는 셰일은 지금까지 사우디 원유의 가격을 제동할 브레이커 역할을 했는데 중동산이나 텍사스산 원유 가격에 연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년 6개월간 50달러 상승…완만한 상승세는 그나마 위안=주목할 점은 유가의 오름세다. 3년래 저점이던 약 25달러부터 현재 75달러 수준까지 50달러 가량 오르는데 2년 6개월이 걸렸다.

앞선 대세 상승 시기 변동 속도와 비교하면 지난 폭은 상대적으로 완만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미국발 금융위기가 진행된 2007~2009년 불과 2년간 유가는 90달러 급등과 100달러 급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후 경기회복으로 40달러였던 유가가 다시 2011년 115달러로 약 80달러 올라서기까지는 2년 6개월이 걸렸다.

금융위기 당시 국제유가는 글로벌 경기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공급 등 두가지 요인에 의해 출렁였다. 유가 상승이 국가 수입으로 직결되는 중동 산유국들은 상승기를 만나면 증산을 최소화해 급등을 방관하고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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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북미산 셰일 공급에 다소 기대를 걸어 볼만하다. 에너지 패권의 재편으로 미국이 70달러 이상의 고유가를 즐긴다지만 셰일오일 업계의 채굴법 개선으로 채산성이 올라가면서 시장에 중동 이외의 경쟁자가 생겼다는 게 자정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급격한 유가 상승은 글로벌 경기 충격과 중동 에너지 패권 재 도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중동의 유가 부양을 미국 셰일 브레이크가 완충할 가능성은 여전한 셈이다.

때문에 유가 100달러 시대가 온다 해도 그건 1~2년 뒤의 일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 등 OPEC 주도 감산에 참여하는 산유국들도 마냥 유가 상승을 바라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셰일가스 생산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2년간 호황 즐긴 석화 업계에 악영향 현실화=70달러선에 도달한 현재 유가는 정유·화학업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유가상승으로 2년간 호황을 누린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화학사들과 GS칼텍스 등 정유사들은 올해 1분기 일제히 실적이 급감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물가다. 유가 상승은 휘발유값에 곧바로 연동하고 있다. 1300원대 휘발유 가격이 어느새 1600원대를 돌파했다. 기름값이 오르면 체감물가가 급등한다. 운송료의 상승은 다른 서민물가를 높일 촉매다.

2000원대 휘발유 가격시대의 충격은 사회 문제로 전이된다. 생계를 위해 차량을 운행하는 화물 운송업자들과 자영업자들은 물론이고 석유제품을 원료로 하는 영세사업자들의 부도가 속출했던 기억이 있다.

물가급등을 방관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기치로 내건 일자리 개혁과 노동자 임금인상, 그로 인한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가 급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체감 물가를 잡을 대책이 필요하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유가는 경제 내부에서 조정될 수 없기에 하나의 주어진 상황으로 간주하고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경제 구조로 이용 효율을 높여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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