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자의 가처분소득 산정의 문제점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18.06.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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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전세대출의 불편한 진실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전세대출자의 가처분소득 산정의 문제점


최근 전세자금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4월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이 52조원을 넘었다. 올해 안에 60조원도 돌파할 기세다. 그런데 전세대출이 늘면서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워진 전세대출자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전세대출을 받으면 가처분소득이 마이너스로 산정되기 쉽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전세대출, 신용카드 발급 거부·이용한도 축소 논란)

신용카드 발급심사에서 가처분소득의 중요성이 커진 건 2012년 말부터다. 당시 정부는 신용카드 남발과 남용으로 인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신용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을 추진했다. 여신법 시행령 등 관련 법규를 개정했고 금융당국, 여신금융협회, 카드업계가 공동으로 ‘신용카드 발급 및 이용한도 부여에 관한 모범규준(이하 모범규준)’을 만들었다.



문제는 전세대출을 받으면 월 가처분소득이 실제와 다르게 산정된다는 점이다. 은행에서 받는 전세대출은 원금 만기 일시상환 조건이다. 대출기간 중 이자만 납부하고 2년 만기시 원금을 일시상환한다.

그러나 신용카드사가 가처분소득을 산정할 때 적용하는 ‘신용카드 발급 및 이용한도 부여에 관한 모범규준 실무지침(이하 실무지침)’에서는 전세대출은 실제 거치기간 및 상환방식에 상관없이 47개월 원리금분할상환을 가정한다. 바로 이 규정이 문제다. 실제로는 매월 이자만 납부하지만, 신용카드사가 가처분소득을 산정할 때는 매월 원금도 상환되는 것처럼 가정하기에 전세대출자의 가처분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통 수억원에 달하는 전세대출은 매월 원금상환액이 클 수밖에 없어 전세대출자의 가처분소득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처럼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 불합리한 실무지침 규정은 5년이 지나도록 개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금융회사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에서는 DSR을 계산할 때 전세대출은 실제와 부합되도록 이자만 원리금상환액에 포함시켰다. 금융당국이 전세대출에 대해 서로 다른 원리금상환액 계산 방식을 적용하는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모범규준’ 개정을 위해서는 회원사인 신용카드사가 요구해야 하는데, 전세대출 관련해서 개정을 요청한 회원사가 없다고 답변했다.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모범규준’에 전세대출은 재산가치와 채무가치를 서로 상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이미 있다고 답변했다. 전세대출은 채무원리금 상환액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으니 카드사에 입증을 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전세대출자가 ‘모범규준’의 제3장 제6조 3항을 직접 찾아보기 전에는 이 사실을 알 수 없는 게 문제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사에서 안내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신용카드사는 전세대출자의 신용카드 발급이 거부되면 신용조회(CB)사에 물어보라는 말만 할 뿐 '모범규준' 상계에 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다. CB사는 해결방법이 없는지 끈질기게 물어봐야 겨우 신용카드사에 금융거래확인서를 제출해보라는 답변만 해줄 뿐이다. 그리고 금융거래확인서도 신용카드 발급 때마다 일일이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대출로 인한 신용카드 발급거부 문제를 알지 못한다면서도 최근 전세대출이 급증하는 추세라서 신용카드 발급거부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에는 수긍했다. ‘모범규준’을 제정할 때만 해도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10조원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5배 넘게 늘었다. 이어 ‘모범규준’은 업계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신용카드사의 자율협의를 거쳐야 개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신용카드사, CB사 두 곳, 여신금융협회, 금감원, 금융위 여섯 군데에 질의를 하고 나서 아쉽게 느낀 점은 대부분이 자신의 일이 아닌 남 일처럼 생각하고 대응한다는 점이었다. 여신금융협회나 금융당국 관계자가 전세대출을 받고 신용카드 발급 거부를 직접 경험했다면 아마도 관련 규정이 벌써 개정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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