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펜으로 본 트럼프 서한…협상 가능성 남겼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18.05.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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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전반부 北 반박, 후반부 협상 중요성 강조…조건은 '마음을 바꾸면'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2018.5.3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2018.5.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 쓴 모든 단어를 직접 구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테이블을 전면적으로 취소하는 서한이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후속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초반부에는 강력하게 북한의 입장을 반박하다가, 후반부에는 언제든 다시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명시했다. 조건은 최근 적대적이었던 협상 태도를 고치고 나오는 것이다.



다음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 전문을 분석한 것이다. 각 문단별로 주요 포인트에 줄을 쳤고, 해설은 붉은색으로 표기했다.

- 친애하는 위원장. 우리는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회담에 관련하여 당신이 시간과 인내, 노력을 보여준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북한이 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지만, 그 사실은 우리에게 전혀 의미가 없다.



▶북한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담화에서 "미국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 앉자고 청한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라며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 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접견한 후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를 결심했었다. 정 실장은 대북특사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북한이 북미대화의 의지가 있음을 알렸었다.

- 나는 당신과 함께 그곳에 있기를 매우 고대했다. 애석하게도, 당신들의 가장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기반하여, 지금 시점에서 오랫동안 계획돼온 이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은 최 부상의 담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 부상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겨냥해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고 지적했다.


외신은 백악관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펜스 부통령 비난을 듣고 인내심의 한계(last straw)를 느꼈다고 보도했다. 앞서 북한은 '리비아식 모델'을 앞세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비난했었지만, 백악관은 곧바로 '트럼프 모델'을 강조하며 볼턴 보좌관을 2선으로 물렸던 바 있다. 볼턴 보좌관과 달리 미국의 2인자로 상징성이 있는 펜스 부통령에 대한 비난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 따라서 세계에는 해악이 되겠지만 우리 서로를 위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임을 이 서한을 통해 알리고자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말해온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도 다음달 12일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물릴 수 있다고 북측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었다. 최후통첩 이후에도 북측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펜스 부통령을 강력 비난하자 회담 자체를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매우 엄청나고 막강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이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서신에서 가장 강한 메시지가 드러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 받던 시절에 가까운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1월2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이 방금 ‘핵 단추가 항상 책상 위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했었다.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이라고 한 것은, 협상을 우선시 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북한에 위협을 가한 대목이기도 하다.

- 나는 아주 멋진 대화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준비돼가고 있다고 느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오직 그 대화이다. 언젠가는 나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지만, 언제든 협상을 재개할 수 있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 공개 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심지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은 6월12일 혹은 그 이후에라도 열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건설적인 대응을 기다린다"라고 밝혔다.

- 그러는 사이,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는 인질들의 석방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스처였으며,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9일 북한을 전격 방문해 국인 북한 억류자 3명을 송환받았던 바 있다. 북미간 화해 무드가 극대화됐던 이벤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새벽에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까지 나가 송환자들을 맞이하는 '쇼'도 연출했었다. 회담은 취소했지만, 북한의 조치에 사의를 표하며 협상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

▶역시 언제든 협상이 다시 진행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청와대가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청와대 관계자도 "북미 정상끼리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긴밀하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해나갔으면"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이라는 대목 역시 포인트다. 현재와 같은 태도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북한에 가하던 최대 수준의 압박과 제재도 계속하겠다"고 밝혔던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고난의 행군'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식 게임'에 동참해 경제적 지원을 받을 것인지 택하라는 의미다.

- 이 세계, 그리고 특히 북한은 영속적인 평화와 큰 번영, 부유함을 위한 위대한 기회를 잃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진실로 역사상 슬픈 순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전폭적인 경제지원을 약속했었다. 서한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북한에 대한 '공약'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중국, 일본 3국과 내가 다 대화를 했다. 이 3국 모두 북한을 도와서, 북한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지금 약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식 게임'에 나와 이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

【서울=뉴시스】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북한이 보인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2018.05.24.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북한이 보인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2018.05.24.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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