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버려진 강아지…이젠 안락사 위기에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18.05.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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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책임지고 싶을 뿐" vs "민원에 어쩔 수 없어…동물 유기 막는게 근본 대책

/사진=한나네 보호소 SNS 캡처/사진=한나네 보호소 SNS 캡처


유기견과 유기묘 등 250여마리의 버려진 동물을 거둬 키워운 '한나네 보호소'가 다음달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최근 구청이 보호소에 사용중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반면 보호소는 구청이 제시한 시정 명령을 따르면 유기동물들이 안락사될 것이라며 끝까지 동물들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소음·악취 민원에 따른 행정명령일 뿐"= 13일 관련 당국에 따르면 대구시 동구 건축주택과와 환경자원과는 한나네 보호소에 각각 시정과 사육시설 사용중지 처분을 내렸다. 민생사법경찰과는 가축분뇨법 위반 혐의를 들어 신상희 보호소 소장(53)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구청은 소음, 악취 등으로 몇 년째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보호소 내 컨테이너가 무허가 건물이라 이에 따른 행정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한나네 보호소가 위치한 공산댐 인근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원칙적으로 사육금지구역이다.



한나네 보호소는 다음달 18일까지 환경자원과가 제시한 대로 보호소를 약 18평(60㎡) 규모로 줄이고 오·폐수 관련시설을 마련하는 등 적절한 사육 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행정명령을 받고 철거 때까지 계속해서 벌금 처분을 받는다. 최악의 경우엔 강제철거도 가능하다.

동구청 환경자원과 관계자는 "벌써 4~5년전부터 시정 명령을 내려왔다"며 "무작정 시설을 폐쇄하라는게 아니라 개를 묶고 분뇨를 관리하는 등 관리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도, 바뀐 게 없어 사용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강제철거를 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규모를 줄이는 등 보호소가 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호소 "유기동물 지나치지 못하다보니...끝까지 책임지고파"= 한나네 보호소는 구청의 시정 명령을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이다. 한나네 보호소는 대구 지역 최대 민간 보호소로 불리며 현재 400여 평(1322.31㎡)에 이르는 공간에서 250여 마리의 동물을 키우고 있다. 신 소장은 "250마리를 어떻게 15평에서 기르냐"며 "50마리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나네 보호소 SNS/사진=한나네 보호소 SNS
한나네 보호소는 2001년 문을 열어 벌써 17년째를 맞았다. 처음엔 지금의 규모가 아니었지만 신 소장이 유기동물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데려오다보니 어느새 동물이 늘어났다. 초기엔 사비로 보호소를 운영했지만, 규모가 늘어난 현재는 기금을 받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근근이 시설을 유지 중이다. 사료값을 내기도 벅찬 보호소에 계속해서 내려지는 벌금은 신 소장의 어깨를 짓누른다.

신 소장은 동물들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는 "동물들이 시 보호소로 가게 되면 거의 모두 안락사될 것"이라며 "시에서 땅을 임대해주면 시설을 완벽하게 하고 동물들을 돌보고 싶다.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보호소의 사정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보호시설 폐쇄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23일 오후 6시 기준 7만1663명이 청원에 동참했다.

◇시 보호소가면 대부분 안락사…동물 유기 근절돼야= 동구청도 안타까운 마음은 같다. 유기견 보호소를 관리하는 동구청 창조경제과 관계자는 "한나네 보호소는 수용시설 등이 열악해 행정법상 유기견 보호소로 지정해 지원을 해주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한나네 보호소 측이 안락사를 이유로 유기견을 시 보호소로 양도하는 걸 거부하고 있어, 지금으로선 입양 홍보를 지원하는 것만이 최선이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고시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 20조에 따르면 유기동물 보호시설은 일정시간 이후에도 유기동물이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시키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을 무책임하게 유기하는 것에서부터 한나네 보호소와 같은 문제가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전진경 동물보호단체 카라 상임이사는 "한나네 보호소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동물을 무책임하게 버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제대로 벌하지 않는 법적 문제로부터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이사는 "일단 최대한 입양을 보낸 후, 모금을 통해서 민원을 유발하지 않는 곳으로 남은 유기 동물들을 이전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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