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억만장자가 말하는 '가난한 찰리'의 투자철학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18.05.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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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부자 멍거의 투자철학①

편집자주 찰리 멍거의 20년간 강연과 대화가 수록된 ‘가난한 찰리의 연감’(Poor Charlie's Almanack, 2005)을 통해 투자철학의 정수를 살펴봅니다.

찰리 멍거가 쓴 ‘가난한 찰리의 연감’(2005년) 책 표지/사진제공=아마존 캡처찰리 멍거가 쓴 ‘가난한 찰리의 연감’(2005년) 책 표지/사진제공=아마존 캡처


워런 버핏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우상이다. 모두가 워런 버핏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워런 버핏이 항상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찰리 멍거(94)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다.

찰리 멍거의 이력은 독특하다. 멍거는 17살 때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 수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19살의 나이에 미 공군에 입대했다. 멍거는 기상장교로 복무하면서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 Tech)에서 기상학을 공부했지만 졸업 하지 않았다. 나중에 멍거는 하버드대(Harvard) 로스쿨에 입학했고 24살에 우등으로 졸업했다.



버핏이 멍거를 알게 된 과정도 재밌다. 버핏은 의사인 한 지인이 여러 번 자신을 멍거와 착각하자 멍거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1959년 그 지인이 가족 저녁모임에 둘을 초대했고 버핏과 멍거는 만나자 마자 서로 의기투합했다.

멍거는 1978년 버크셔해서웨이의 부회장이 됐다.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핏과 멍거는 파트너로서 버크셔해서웨이를 키워 나갔다. 버핏이 멍거라는 훌륭한 조력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버크셔해서웨이는 지금처럼 시총 48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버핏이 공식석상에서 멍거를 자주 비즈니스 파트너로 추켜세우는 이유다.



버핏에 관한 책은 많지만, 버핏이 직접 쓴 책은 없다. 그런데 멍거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Poor Charlie's Almanack)이라는 책을 2005년 출판했다. 멍거가 존경해 마지 않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가난한 리차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k)을 흉내 낸 책인데, 멍거가 20년 동안 했던 강연과 대화들을 수록하고 있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재산이 약 2조원에 달하는 억만장자가 쓴 책 치고는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멍거는 살만큼 살았고 돈도 많고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보석 같은 투자와 삶의 지혜가 흩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548페이지의 양장본으로 상당히 두꺼운데도 아마존에서 평균 독자 평점 4.7점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독자 중 83%가 5점 만점을 줬다. 아쉽게 한글 번역본이 없는데, 국내 출판사들이 번역의사를 타진했으나 멍거가 거절했다고 한다. 이 책은 중국어로만 번역됐고 다른 국가에서는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는 버핏에게 답변할 기회를 넘기면서 항상 “나는 추가할 내용이 없다”(I have nothing to add)고 말하지만, 사실 멍거는 할 말이 많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멍거가 투자자들,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90년을 넘게 살아온 현자의 지혜가 넘친다.

20년 후 성인이 되는 자식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할 것이다. 20년 전 멍거가 한 강연이 여전히 유용한 것처럼 20년 후에도 멍거의 투자 지혜는 빛이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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