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땅콩’으로 궁지에 몰렸던 언니를 위해 "복수해주겠다"고 했다. '물컵' 하나로 복수가 됐는지 알 길이 없지만, 수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을'들의 고발을 촉발 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내놓은 사과문에선 ‘충심 어린 지적과 비판을 보내주셨다’고 했다. ‘진심’이 아니라 ‘충심’이란다. 평소 사람들이 자신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선민 의식이 투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조 회장 일가의 행태는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손꼽히는 사우스웨스트항공사를 일군 허브 캘러허 회장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1971년 항공기 3대로 시작, 초저가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단기간 내 급성장했다. ‘왕은 고객이 아닌 직원’이란 경영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만6000명 직원들 이름을 얼굴과 함께 기억하며 반갑게 손을 잡아줬고, 생일도 잊지 않고 꼼꼼히 챙겼다. 때론 토끼로, 앨비스 프레슬리로 분장하며 직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CEO(최고 경영자) 덕에 직원들은 넘치는 흥으로 고객을 맞았다.
캘러허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던 2008년엔 항공기 527대를 보유한 미국 4위 항공사로 성장했고,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10대 회사에 13년 연속이름을 올렸다. 저가 항공이었지만, 44년 연속 흑자에 서비스는 1등이었다. 2001년 9·11 테러로 항공 업계에 암흑기가 도래해 12만 명이 해고됐지만, 캘러허는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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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16일 USA 투데이에 전면 광고 하나가 실렸다. ‘회장이 아닌 친구가 되어 준 허브에게 감사하다’는 직원들의 마음이 담긴 광고였다. 1만6000명의 직원들은 6만 달러의 광고비를 기꺼이 부담했다.
캘러허는 평소 “‘지위나 직함은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평생의 가르침이 됐고, 직원을 고객처럼 여기는 사우스웨스트 정신의 기본이 됐다”고 말했다. 폭언 등 온갖 갑질을 일삼은 조 회장 슬하 3남매가 받아보지 못한 밥상머리 교육의 힘이다.
항공산업은 기장, 승무원 등이 아주 중요하다. 이들의 손에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이 달려 있는 탓이다. 그래서 즐겁게,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는 그 무엇 보다 중요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말한다. "언감생심 캘러허 회장 정도는 생각지도 않는다"고 "그저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모습만이라도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조 회장은 그러나 사태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두 자매의 퇴진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원들과 국민들은 이미 학습으로 체험했다. 더 이상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처지도 못 된다.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해 납득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