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스토리]"아티스트들이 선택한 메이크업 브러시 '피카소'"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18.04.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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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퍼시픽 '피카소 메이크업 브러시', "품질만큼은 세계 최고 자신"

안익제 소산퍼시픽 대표/사진=배병욱 기자안익제 소산퍼시픽 대표/사진=배병욱 기자


"붕어즙입니다. 친구가 물 좋은 데서 잡은 붕어로 달인 겁니다."
​"이왕 가져온 거니 먹기는 하겠네만 이제 그만 찾아오게. 소용없는 일일세."

​17년쯤 전의 일이다. 안익제 소산퍼시픽 대표는 속눈썹 제조업체 H사의 사장을 뻔질나게 찾아갔다. 꼭 만들고 싶은 속눈썹이 있는데, 그곳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H사는 속눈썹을 제조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회사였다.



​​안 대표는 당시 속눈썹을 제조·판매하고 있었지만 고급형 라인을 추가하려고 했다. 기존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장들에 해당 제품의 제조를 의뢰했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알음알음해 보니 H사라면 가능하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자네 얘기대로 그 제품을 만들려면 우리가 제조 라인에 별도로 투자해야 하는데 자네라면 그렇게 하겠나." "아 글쎄 안 된다니까."



​​H사 사장에게서 수없이 들었던 얘기다. 지성이면 감천이랬다. 2년 동안 50번 이상 찾아갔다. 3년째쯤 됐을까. "딱 한 종류만 만들어 주겠네."

​​2004년 이렇게 세상 빛을 본 제품이 국내 연예인 대부분이 쓴다는 '아이미 속눈썹'이다. 속눈썹 제품의 경우 일반적으로 테이프 위에 한 올씩 접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아이미'는 다르다. 테이프 없이 속눈썹 가닥가닥을 손으로 일일이 '옭매기'한 제품이다. 이 때문에 속눈썹 가닥이 빠지지 않는다. 가장 큰 특징은 '무(無) 테이프' 방식이라 가볍다는 점이다.

​​처음 나왔을 땐 대다수 거래처가 외면했다. 원가가 기존 제품보다 4배나 비쌌던 탓이다. 하지만 청담동을 통해 연예인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소비자 시장으로 퍼져나갔다.


​​◇소산퍼시픽=피카소, 피카소=메이크업 브러시

​​소산퍼시픽은 메이크업 브러시 브랜드 '피카소'로 더 유명한 기업이다. 국내 프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99%가 피카소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이나 패션계 모든 얼굴이 피카소 브러시로 완성된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피카소는 비싸다. 원가만 해도 시중 제품보다 20배나 높다. 소비자가는 일반 제품과 비교했을 때 5배 차이 난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한 명의 소비자가 피카소 제품을 많이 구매하긴 부담스러울 테고, 이건 바라지 않는다"며 "한 제품 정도만 사용해 보면서 품질에 감동받길 원한다"고 했다.

​​◇목적에만 눈멀지 말라

​​바야흐로 H&B(헬스앤뷰티)스토어·드럭스토어 전성시대다. H&B스토어에 입점한 뒤 매출이 수십 배 늘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심지어 100배나 올랐다는 곳도 있다. 너도나도 이곳에 입점 못해 안달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랭킹 1~2위 H&B스토어 MD들이 찾아와 제품을 넣으라고 해도 이를 거절하고 있다. 현재 국내 3위(매장수·매출액 기준) H&B스토어에 입점해 있는데, 입점 당시 '경쟁사엔 물건을 안 넣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2위 H&B에 추가로 입점하면 해당 제품군의 매출이 5배가량은 족히 오를 거예요. 하지만 구두로 한 얘기도 약속이니까 지켜야죠. 사업 이전에 신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득탐승(不得貪勝)

​​바둑의 열 가지 비결인 '위기십결' 가운데 하나다. 이기는 데만 집착하면 결국 패한다는 뜻이다. 이기려고 두는 게 바둑이지만, 목적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라는 말이다.

​​안익제 소산퍼시픽 대표는 '부득탐승' 정신으로 20년 넘게 외길을 걸어 왔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죠. 하지만 매출에만 목매지 않습니다."

​​소산퍼시픽은 사반세기를 이어온 업력에 비해 외형이 그리 크진 않다. 안 대표는 "기업이란 게 수익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가는 게 더 의미 있는 거 아니냐"면서 "강소기업으로 남고 싶고 우리 임직원들의 2·3세들까지도 피카소에서 브러시를 만들기 바란다"고 했다.

​​◇이것이 알고 싶다

​​-품질을 좀 낮춰서라도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 매출을 늘리는 데 도움 되지 않겠나.
​▶품질을 좀 낮춘다? 그럴 수 없다. 그건 기존 고객들에 대한 배신이다. 또한 고객 입장에서 피카소 브러시를 손에 들고 있다는 건 '특별함'이다. 만약 너도나도 옆에서 피카소를 꺼내 든다면 '평범함'이 돼 버린다. 고객의 자부심을 지켜줘야 한다. 그리고 피카소는 양산 체제가 안 맞는 브랜드다.

​​-대량 생산 체제가 안 맞다는 건 무슨 얘긴가.
​​▶피카소 브러시는 전 세계 숨어 있는 최고의 자연모로 만들어진다. 이 원사를 얻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벼야 할 정도로 구하기 힘들다. 재료가 부족한데 어떻게 많이 만들어 내나.

​-인조모를 쓸 수도 있지 않나.
​▶인조모로는 원하는 품질을 낼 수 없다.

​​-그럼 기존 라인은 그대로 가고, 중저가형 세컨드 브랜드를 따로 만들면 되지 않나.
▶국내 내로라하는 유통 업체들이 그런 제안을 해왔지만 거절했다. 피카소는 '세컨드'란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로지 최고 품질의 브러시만 만든다.

안익제 소산퍼시픽 대표(사진 맨 왼쪽)와 직원들/사진=배병욱 기자안익제 소산퍼시픽 대표(사진 맨 왼쪽)와 직원들/사진=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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